한국은행이 지난해 사상 최대인 7조4000억원 가량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시중은행 전체 순이익과 맞먹는 규모다. 법인세 납부액도 2조5600억원이 넘어 삼성전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세금을 낸 법인이 됐다.
일반 기업으로 치면 장사를 아주 잘한 셈인데, 한은은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무자본 특수법인이라 거둔 이익의 30%는 법정적립금으로 쌓고, 나머지는 국고로 보낸다. 이익이 늘어날수록 재정 기여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한은은 31일 ‘2020년 연차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7조365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과 비교해 2조528억원(38.6%) 급증했다.
한은의 순이익 규모는 2014년만 해도 1조9846억원을 나타냈지만 이후 빠른 속도로 늘어 2019년 처음으로 5조원을 돌파한데 이어 1년 만에 7조원도 훌쩍 넘어섰다. 지난해 세전이익은 10조1890억원에 이른다. 이 같은 이익은 1950년 한은 설립 이래 최대 실적이다.
한은은 지난해 순이익이 크게 늘어난 배경으로 국제 금리 하락(채권가격 상승) 및 해외주가 상승에 따른 외화유가증권 매매 차익이 증가한 점을 꼽았다.
유가증권 매매이익으로만 9조8978억원을 올렸다. 반면 기준금리가 연 0.5%로 내려가면서 영업비용에 해당하는 통화안정증권 이자는 전년보다 8921억원 줄었다. 코로나19 확산과 대응 환경에서 일종의 ‘특수’를 봤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지난해 전체 시중은행의 순이익이 전년대비 14% 쪼그라든 7조7000억원을 기록한 것과도 대비된다. 시중은행들은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충당금을 쌓은 영향으로 실적이 나빠졌다.
한은은 지난해 세금도 역대 최대인 2조8231억원을 냈다. 법인세만 해도 2조5665억원을 납부해 삼성전자(법인세 비용 9조9372억원)를 제외한 법인 중 가장 많은 세금을 냈다. 상장법인 중 2위인 SK하이닉스(1조4321억원)보다 1조원 이상 많다.
한은은 한은법에 따라 순이익의 30%인 2조2098억원을 법정적립금으로 적립했다. 법정적립금은 한은이 손실을 낼 경우를 대비해 쌓아두는 돈이다. 또 농어가 목돈마련저축 장려기금 출연 목적으로 341억원을 적립했으며, 나머지 5조1220억원은 정부에 세입으로 납부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