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협,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에 “블랙리스트 경험 떠올리게 해”

입력 2020-09-01 06:01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표지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협회)가 ‘나다움 어린이책’ 7종에 대해 회수 결정을 내린 교육부와 여성가족부의 조치를 비판하고 철회를 요구했다. 정부는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해당 시리즈에 대해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했다고 비판하자 전량 회수키로 결정했었다.

협회는 31일 정부의 결정으로 “교사, 평론가, 작가 등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자율적으로 도서를 선정한 ‘나다움 어린이책 도서위원회’의 결정이 훼손되었으며, 이 책들을 문제가 있는 것인 양 낙인 찍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더 심각한 것은 한 나라의 교육을 책임진 교육부가 사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이 즉석에서 신속한 조치를 약속하고, 여성가족부는 하루 만에 해당 도서에 대한 회수 조치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협회는 또 정부가 사회 일각에서 제기된 비판에 별다른 검토 없이 일방적으로 회수 결정을 내려 교사 및 학부모의 자율권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배포하지 않았다면 교사들과 학부모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선택되었을 것이고, 더 많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읽혔을 것”이라는 게 협회의 입장이다. 나아가 협회는 국가기관이 심사과정에 관여하거나 선정위원회 심사 결과를 뒤집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회는 “우리에게는 정부 권력이 개입함으로써 블랙리스트 도서들을 양산했던 전례가 있다”며 “이번 사태는 우리 출판인들로 하여금 블랙리스트의 어두운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계 각국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도서들을 부적절한 책으로 만든 일부 언론과 정치인에게 유감을 표하고, 이들의 비판을 수용한 정부의 반성과 사과를 촉구했다. 협회는 “교육부와 여성가족부는 아이들이 ‘자기긍정,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지향’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성평등·인권교육을 설계해야 한다”며 “여기에는 아이들을 공동체의 올바른 시민으로 키운다는 교육 본연의 목적만이 고려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은 여성가족부가 지난해부터 롯데지주,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추진한 사업이다. 어린이·청소년이 책을 통해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나다움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해 추진돼왔다. 하지만 지난 25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김병욱 의원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책을 예로 들어 “노골적 표현이 있다”며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일었다. 정부는 그 이튿날 회수 결정을 내렸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