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경제정책 전반이 실패했음을 솔직히 인정한 데 이어 코로나19 대응에도 실책이 있었다고 자인했다. 김 위원장이 전례 없는 ‘삼중고’(대북제재·코로나19·수해)에 직면하면서 실책을 인정하는 횟수도 늘어나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5일 주재한 노동당 제7기 17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방역 사업에서 나타난 “일련의 결함들을 엄중히 평가하고 시급히 극복해야 할 대책적 문제들을 연구했다”며 “일련의 결함들을 근원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전 당적, 전 사회적으로 강력히 강구하라”고 주문했다. ‘일련의 결함’이라는 표현을 두 차례나 사용하며 코로나19 대응에 실책이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1월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하고 코로나19 유입·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은 현재까지 “단 한 명의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김 위원장의 발언을 놓고 보면 실상을 그렇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은 최고지도자를 ‘무오류 존재’로 신성화했던 선대와 달리 자신과 정권의 잘못을 적극 인정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2017년 신년사에서는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자책 속에서 지난해를 보냈다”고 했고, 2014년 평양 신축 아파트가 무너졌을 때는 선전기관을 통해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뜻을 표하고 수도 시민들에게 사과한다”고 했다.
올 들어 코로나19 사태와 수해라는 복병을 마주하면서 김 위원장의 실책 인정 횟수도 잦아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9일 주재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내년 8차 당 대회 때 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2016년 5월 7차 당 대회 때 야심차게 내세웠던 국가경제개발 5개년 전략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주민들 앞에서 공개 인정한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7일 “김 위원장이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을 앞두고 일종의 예방주사를 맞고 있는 것”이라며 “주민들에게 보일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점을 사전에 알려 주민들이 느낄 실망감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정책 실패를 각종 회의를 통해 계속 자인하면서 책임을 분산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노동당 간부들이 손발을 맞추지 못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민들에게 보내고 있다는 얘기다.
태풍 등 재난 관련 회의를 사전에 주재하고 이를 공개하는 모습도 정례화되는 듯하다. 김 위원장은 이번 회의에서 제8호 태풍 ‘바비’에 대한 대응책을 철저히 마련할 것도 주문했다. 사전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주민들에게 보이면서 민심을 다독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최근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가 상당한데, 태풍이 또 오면서 김 위원장이 긴장한 것 같다”며 “사전 대비로 태풍 피해를 최소화해 민심 이반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최근 내린 비로 농경지 3만9296정보(390㎢), 살림집 1만6680여세대, 공공건물 630여동이 파괴·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여의도 134배 면적의 농경지가 추수철을 앞두고 물에 잠긴 셈이다.
이밖에 위기관리에 대응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정상국가 지도자’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제13호 태풍 ‘링링’이 상륙하기 전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직접 주재한 바 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