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우리 편’ 검사장이 ‘측근 비리’ 수사하자 잘랐다

입력 2020-06-21 14:41 수정 2020-06-21 15:42
‘경질’ 버먼 지검장, 한 때 ‘친(親) 트럼프’로 분류
버먼, 트럼프 인수위서 일해…트럼프, 직접 ‘면접’
그러나 버먼, 줄리아니 등 트럼프 측근들 ‘정조준’
후임엔 트럼프 ‘골프 친구’ 클레이턴 기용
트럼프 “법무장관이 해임했다” 책임 돌려

제프리 버먼 미국 뉴욕 남부 연방검찰청장이 2018년 10월 26일 워싱턴에 있는 법무부에서 발언하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들에 대해 수사의 칼날을 들이댔던 제프리 버먼 뉴욕 남부 연방검찰청장을 경질했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20일(현지시간) 버먼 지검장에게 서한을 보내 “당신이 사임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에 해임을 요청했고 대통령이 그렇게 했다”고 전했다.

버먼 지검장은 당초에는 ‘친(親) 트럼프’ 검사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민주당은 수사 공정성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버먼 지검장의 임명을 반대하기도 했다.

비먼 지검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권 인수위원회에서 직함을 갖고 있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버먼 지검장을 임명하기 전에 직접 면접까지 봤다고 CNN방송은 보도했다.

버먼 지검장은 또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같은 로펌의 주주로 활동하기도 했다. 버먼 지검장은 공화당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버먼 지검장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버먼 검사장은 2018년 1월 뉴욕 남부검찰청장에 임명되면서 트럼프 권력의 중심을 겨냥해 수사의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에 등을 돌린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기소했고 트럼프 재단의 선거자금법 위반을 수사했다.

버먼 지검장의 지금 타깃은 로펌을 같이 운영했던 줄리아니 전 시장이다. 버먼 지검장이 이끄는 뉴욕 남부검찰청은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줄리아니를 도왔던 우크라이나 출신 사업가 리브 파르나스와 벨로루시 출신인 이고르 프루먼을 선거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해 10월 이미 기소했다.

뉴욕 남부검찰청은 파르나스와 프루먼을 연결고리로 줄리아니의 범죄 행각을 밝히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줄리아니도 걱정이지만, 한 때 탄핵 올가미에 자신을 빠뜨렸던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재점화되는 것이 전혀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자신의 측근들에 대해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는 버먼 지검장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고 판단해 경질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바 법무장관은 후임은 제이 클레이턴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클레이턴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골프 친구라고 전했다.

바 장관은 그러면서 후임 클레이턴 위원장에 대한 미 상원 인준이 이뤄질 때까지 뉴욕 남부검찰청장의 차장검사인 오드리 스트라우스가 지검장 대행을 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버먼 지검장은 “바 장관이 스트라우스 차장 검사를 (지검장 대행으로) 기용함으로써 정상적으로 법률을 준수한 것을 존중한다”면서 사임 의사를 전했다.

후임자가 올 때까지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버먼 지검장이 생각을 바꾼 것은 스트라우스 지검장 대행이 현재 뉴욕 남부검찰청이 진행 중인 수사를 뚝심있게 이끌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버먼 지검장이 이끌었던 뉴욕 남부검찰청은 미국 93개 연방검찰청 중 가장 수사력이 뛰어난 검찰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뉴욕 남부검찰청은 맨해튼 지역을 관할하고 있으며 특히 주가조작을 비롯한 대형 화이트칼라 범죄수사에 뛰어나 ‘월가의 저승사자’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버먼 지검장의 해임을 자신이 결정했다는 버 장관의 서한 내용을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무부는 버 장관의 부처이지, 내 부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매우 능력이 뛰어난 법무장관을 갖고 있으며 이것(버먼 지검장 해임)은 진정으로 버 장관의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먼 지검장 해임이 정치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해 버 장관에 책임을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