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피해자 국가 배상 근거를 담은 제주4·3특별법 전부개정안이 이번 20대 국회에서 결국 처리되지 못했다.
지난 4월 총선과 4·3추념식을 즈음해 제주를 찾은 여야 당대표들은 하나같이 통과를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도내 각계에서 유감을 표하고 있다.
20일 20대 국회가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밀린 법안 처리에 나섰다. 제주도민들이 숙원했던 제주4·3특별법 전부개정안은 앞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처리되지 못하면서 오는 29일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다.
제주4·3특별법 전부개정안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국가 배상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은 트라우마 센터 건립, 4·3 당시 군사재판 무효화를 통한 수형인들의 명예회복, 추가 진상조사 등도 포함하지만 트라우마센터는 국립 전환에 앞서 위탁 방식으로 최근 문을 열었고, 군사재판 무효화를 주장한 제주 수형인들의 손을 사법부가 들어주는 등 이미 다른 부분에서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상당 부분 형성됐다.
배상 문제는 달랐다. 지난 12일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특별법 전부개정안이 담고 있는 배상의 규모가 크다는 기획재정부와 정부 내에 이견이 있다는 이유로 야당이 반대하면서 소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4·3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상액은 수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기 때문에 지원 규모와 범위를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앞서 정부가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에 의해 희생된 제주4·3피해자 300여명(과거사법)에 대해 배상한 액수를 보면 1인당 400만~8000만원(희생자 8000만원, 배우자 4000만원, 가족 800만원, 형제 400만원) 선이었다. 현재까지 확정된 4·3 희생자와 유족은 9만4983명(사망자 1만422명, 행방불명 3631명, 후유장해 195명, 수형자 284명, 유족 8만451명)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배·보상 문제와 관련해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을 제주 만의 사안으로 보고 있지 않다. 통과될 경우 제주와 유사한 공권력 남용 사례에 대해 지급해야 할 국가 배상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국회 마지막 본회의 직전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과거사법 개정안이 배·보상 조항을 뺀 뒤에야 여야 합의를 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은 정치권의 이 같은 속내를 짐작케 한다.
4·3특별법은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추미애 의원이 4·3특별법을 공동발의해 그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 후 20년간 4·3의 명예회복과 진상조사에 큰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동시에 피해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은 2017년 12월 군사재판 일괄 무효화, 피해 배상,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등을 담은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는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하루 앞둔 19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며 법안 심의를 촉구했다. 같은 날 정의당 제주도당은 성명을 내 “법안심사소위에서 4·3 법안이 처리되지 못한 것은 행안부와 기재부가 엇박자를 냈고, 이는 청와대와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정치력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