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마이너스 유가’ 소식을 들었다. 원유를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돈도 받고 원유도 가져가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 방문한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전날에 비해 5원쯤 내렸을 뿐 큰 차이가 없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지난 21일 마이너스 37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과잉공급에 수요 위축, 선물 만기일 도래 등이 겹쳐 일시적으로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0원이 되어도 국내 소비자는 휘발유 1리터 구매에 최소 850원을 지불해야 한다. 국제유가와 관계없이 부과되는 유류세 때문이다. 석유제품의 절반 이상을 유류세가 차지하기 때문에 국제유가 하락에도 국내 석유제품 가격의 변동은 크지 않다.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휘발유에는 리터당 592원의 교통에너지환경세(교통세)가 부과된다. 교통세의 15%인 79.35원이 교육세로, 26%인 137.54원이 주행세로 부과된다. 휘발유 1리터당 총 745.89원의 유류세가 붙는다. 여기세 부가세가 추가되면 휘발유 1리터에 부과되는 최종 세금은 851.56원이다. 즉, 국제유가가 0원이고 정유사와 주유소가 모든 비용을 부담해 제로마진으로 판매한다고 해도 휘발유 1리터당 최저가격은 850원이다.
한국석유공사가 집계한 22일 전국 휘발유 평균가격은 리터당 1296원이다. 이는 주유소에서 소비자에 판매하는 최종가격이다. 정유사는 원유를 수입할 때 원유 가격의 3%에 해당하는 관세와 리터당 16원의 석유수입부과금을 지불한다. 관세와 부과금, 국제 유가, 정제마진 등을 고려해 결정한 세전 가격이 이달 둘째주 기준 리터당 310원이다. 여기에 정유사는 유류세를 고려해 1162원에 주유소에 휘발유를 공급한다. 이 가격과 주유소 판매가격의 차이가 주유소의 마진이다.
석유제품 가격의 약 60%를 차지하는 관세, 유류세, 석유수입·판매부과금 등 조세와 준조세로 정유업계 부담이 가중되자 정부는 석유수입·판매부과금 90일 및 관세 2개월 납부 유예 등의 지원정책을 발표했다. 유동성 위기를 고려한 것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2일 조경목 SK에너지 사장,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사장,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 류열 에쓰오일 사장, 김효석 대한석유협회장 등을 만나 간담회를 갖고 정유업계 애로사항을 청취하기도 했다.
업계는 유류세 인하 등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1분기 적자만 3조원에 달하는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 예상보다 크다는 것이다.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은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현재 정유업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와 국가 기간산업으로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건의를 했다”며 “정부에서 이에 공감했고 오늘 나온 사안에 대해서도 정부가 검토 후 도와줄 것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