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 초읽기, 삼성·LG도 촉각…“합의안 안 나올수도”

입력 2020-01-29 18:13
디지털세 논의, 미국-유럽 대리전 양상
‘구글세’가 ‘삼성세’ 될 수 있다는 우려
정부, 디지털세 대응팀 한 달 넘도록 팀장 인선 난항
대응 인력도 일본보다 부족


국내에 사업장을 두지 않고도 막대한 매출을 거두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디지털세’의 윤곽이 나올까. 디지털세의 뼈대를 만드는 ‘다자간 협의체(IF·Inclusive Framework)’ 총회가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했다. 이틀 동안 열리는 이번 총회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과 주요 20개국(G20)을 포함한 136개국이 참여한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관심도 뜨겁다.

한국 정부도 고광효 기획재정부 소득법인세정책관과 실무자들을 보냈다. 앞서 OECD는 오는 1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이전까지 ‘디지털세 공통 과세기준’을 만들어 G20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총회는 세부사항 논의에 앞서 기본 골격만 합의해보자는 취지에서 열렸다.


그러나 OECD 계획대로 기본 틀을 담은 합의안이 도출될지 미지수다. 디지털세 도입 논의는 구글 등 ‘IT 공룡’들이 각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데도, 고정사업장을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국가에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건 문제라는 지적에서 출발했다. 국제조세협약에서는 법인세 과세의 근거를 고정사업장 존재에 둔다. 이 때문에 해당 국가에 고정사업장을 운영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IT 공룡과의 조세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세계적인 저성장 흐름이 강해지자 세원 마련이 급해진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디지털세 도입을 주도하고 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 기업이 주요 표적이 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대리전 양상이 됐다. OECD 논의와 별개로 ‘디지털 서비스세’를 도입한 프랑스가 최근 미국 기업에 대한 과세를 올해 말까지 유예키로 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OECD에선 디지털세 도입이 순탄하지 않다. OECD 공청회에 참석했던 법무법인 양재의 한성수 변호사는 “디지털세가 도입되는 순간 미국 IT 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게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으로선 ‘구글세’가 아니라 ‘삼성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안고 있다. OECD 사무국에서 디지털 기업뿐 아니라 디지털 환경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마케팅하는 제조기업에도 디지털세를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해서다. 정부는 “아직 디지털세의 기본 골격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기업명을 거론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다만 관련 업계는 논의 진행과정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디지털세 논의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디지털세 대응팀’ 팀장 인선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잇다. 기재부는 지난해 말 세제실에 대응팀을 만들었다. 세제실은 디지털세 초안 마련이 초읽기에 들어간 만큼 관련 문제를 들여다본 서기관급 실무자를 팀장으로 기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실무자를 팀장으로 기용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임명이 늦춰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한국 정부가 다른 국가와 비교해 디지털세 대응 인력을 적게 운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기재부 세제실의 국제조세제도과를 포함해 디지털세 논의 등 국제조세규범에 대응하는 정부 내 인력은 10명도 되지 않는다. 한국국제조세협회에 따르면 일본은 국제조세규범과 관련해 국제조세제도 2개 과(科)에 35명을 배치했고, 독일도 6개 국제조세국(局) 내에 50명을 투입해 디지털세에 대응하고 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