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친구에 의해 살해된 현직 경찰관의 유족은 26일 “주취 감형으로 인해 피해자와 유가족이 두 번 살해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숨진 경찰관의 아내라고 밝힌 A씨는 이날 ‘11년 지기 절친에게 살해된 경찰관 사건의 명명백백한 진상 규명 및 엄중한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A씨는 만취 상태였다는 피의자 B씨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A씨는 “피의자가 ‘술을 마셔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본인에게 불리한 것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면서 “변호사를 이용해 주취 감형을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 그러나 범행 후 여자친구 집 비밀번호를 똑똑히 기억해 들어가는 등의 정황을 볼 때 기억나지 않는다는 주장은 명백히 거짓”이라고 덧붙였다.
또 “친한 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한 뒤 여자친구의 집에 가서 증거 인멸을 위해 깨끗하게 샤워하고, 잠을 잔 후 일어나 ‘친구가 쓰러졌다’고 119에 태연하게 신고한 피의자는 제 남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해를 가했을 잠재적 살인자”라고 주장했다.
A씨는 피의자의 직업이 승무원이라며 “응급상황 시 대처 방법 등을 수없이 훈련받았을 텐데, 피 흘리는 사람을 보고도 태연하게 저지른 그의 행위는 살인이라는 단어 외에 설명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지구대에 근무 중이었던 A씨 남편은 지난 14일 강서구의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최초 신고자인 B씨를 피의자로 특정, 긴급체포했다. B씨는 A씨 남편에게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한 뒤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A씨에 따르면 A씨 남편은 13일 오후 6시30분쯤 B씨와의 저녁 약속을 위해 집을 나섰다. 이후 오후 11시쯤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A씨는 “당시 나와 인사를 나누고 싶다는 B씨와 통화도 했다”며 “B씨가 ‘우리 집에서 재워도 되겠느냐’는 허락을 구했다”고 말했다.
A씨 남편은 이후 B씨를 따라 그의 집으로 이동했다. B씨 집 엘리베이터 CCTV에 어깨동무를 한 A씨 남편과 B씨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영상에 따르면 두 사람이 귀가한 것은 오전 2시쯤. 약 30~40분 뒤 속옷만 입은 B씨는 몸에 피범벅을 한 채 복도로 나왔다. 이후 옆 동 빌라에 있는 여자친구의 집으로 도주했다.
A씨는 “옆 동 빌라 공동현관에 도착한 B씨는 그곳에서 속옷을 벗어 버린 후, 여자친구 집으로 가 샤워를 한 뒤 잠을 잤다. 당시 B씨 여자친구는 집을 비웠었다”면서 “B씨는 다음 날 오전 10시30분쯤 태연하게 본인 집으로 돌아와 119에 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숨진 남편의 상태가 처참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A씨는 “제 남편의 얼굴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멍이 들어 있었고, 코와 입술에 피딱지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며 “이마는 길게 찢어져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싸웠다는 피의자의 몸과 얼굴에는 멍 하나, 상처 하나조차 없었다. 남편의 키는 180㎝가 넘고, 몸무게도 85㎏ 이상이다. 경찰관이라서 호신술이나 방어 능력도 뛰어난데, 싸웠다는 피의자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한치의 억울함 없는 철저한 수사와 합당한 형벌이 제가 바라는 것”이라며 “이 사회에 공정한 법의 집행과 정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B씨는 지난 17일 구속됐다. 경찰은 23일 서울경찰청사에서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현재까지 판단으로는 B씨가 흉기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살해 동기 등을 파악하기 위해 B씨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을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