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예능계 평가 역시 이 두 PD의 활약상으로 갈음할 수 있겠다. 주인공은 예능계 양대산맥 김태호 나영석 PD. ‘놀면 뭐하니’ ‘신서유기7’ 등 2019년을 메운 많은 인기작이 이들 손에서 탄생했다. 놀라운 건 예능판을 10년 넘게 주름잡은 이 두 PD가 여전히 진화를 거듭 중이란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국민MC이자 두 PD의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한 유재석 강호동을 빼놓고는 이들의 성장도 논하기 어렵다.
“새로운 걸 익숙하게”
지난해 국민 예능 ‘무한도전’(2006) 종영 후 1년여 간 휴식했던 김 PD는 올 하반기 예능 2개를 연달아 선보였다. 릴레이카메라 놀면 뭐하니와 크라우드 펀딩 소재 ‘같이 펀딩’이 그것이다. 캐릭터쇼 무한도전을 이끌어온 김 PD의 예능으로는 상당히 이색적이었는데, 찬찬히 살피면 무한도전의 유산을 이어받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같이 펀딩은 무한도전의 공익성을, 놀면 뭐하니는 매주 새 도전들로 채워졌던 무한도전의 형식을 물려받은 셈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무한도전은 가치 지향적일 때가 많았고, 놀면 뭐하니처럼 매주 콘셉트도 바뀌었다”며 “무한도전의 장점을 분리해 각각 발전시킨 것 같다”고 했다. 이를테면 이들은 무한도전이 낳은 이란성 쌍둥이인 것인데, 새 프로그램들이 일면 친숙하게 느껴졌던 건 이 때문이다.
최근 시청률 8%(닐슨코리아)로 오름세를 탄 놀면 뭐하니는 김 PD의 발전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준다. 트렌디한 창작자답게 변화된 플랫폼 환경에 맞춰 방송과 유튜브 결합을 시도한 김 PD는 최근에도 유플래쉬(드럼), 뽕포유(트로트)와 관련된 유튜브형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프로그램 틀이 열려있어 근래 반향을 일으킨 뽕포유 등 다양한 결과물로 이어졌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다. 무한도전이 그랬듯이 트로트 등 여러 콘셉트의 결합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쯤에서 새삼 깨닫게 되는 건 김 PD의 뮤즈이자 페르소나인 유재석의 공이다. 김 PD는 유재석을 두고 “보는 눈이 넓어 업계 선후배처럼 얘기를 나눈다”고 했다. 유튜브로 치면 1인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를 걸출한 연출자와 예능인이 뭉쳐 만드는 셈이다. 드럼, 트로트로 이어지는 변칙적 콘텐츠를 제 것인 양 소화할 예능인도 유재석이 거의 유일하다.
무한도전 이후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 등 여러 예능에서 활약한 유재석이지만 김 PD와 호흡할 때 맞춤옷을 입은 듯한 느낌을 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김 PD의 프로그램을 꿰뚫는 코드는 ‘도전’과 ‘성장’”이라며 “이 키워드에 부합하고 김 PD의 여러 콘텐츠를 흡수하는 성장형 인물이 바로 유재석인 것”이라고 했다.
“익숙한 걸 새롭게”
나 PD에게는 강호동이 있었다. 무한도전과 쌍벽을 이룬 ‘1박2일’(2007) 시즌1의 메인 PD와 멤버로 만난 이들도 각별한 우정을 자랑한다. 최근 유퀴즈에 출연한 나 PD는 인생의 스타로 강호동을 꼽으면서 “꾸준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강호동은 올해에도 ‘강식당’ 등 여러 개의 나영석 사단 작품에 출연해 저마다 히트를 시켰다.
특히 스마트폰 등 신문물에 어두운 ‘아재’ 강호동은 요즘 유튜브에서 활약하며 트렌디한 방송인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일면 타의적인데 바로 나영석 사단의 라끼남 덕분이다. 라끼남은 나영석 PD의 유튜브 채널 ‘십오야’ 콘텐츠로 강호동이 지리산 등 전국을 돌며 라면을 끓여 먹는다는 얼개다. 강호동은 라면을 여섯 봉지씩 먹어 ‘육봉 선생’으로 불리는 라면 애호가이기도 하다.
고된 산행에 얼굴이 벌게져서도 연신 말을 던지는 강호동의 열정이 새삼 대단하다. 유튜브 조회 수도 기본 100만회를 웃도는데, 온라인엔 강호동의 굴라면 등을 끓여본 블로거들의 글이 수두룩하다. “형(강호동)은 역시 맛있는 걸 먹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는 나 PD 말처럼 평소 강호동을 잘 아는 데서 온 기획의 힘인 셈이다. 하 평론가는 “강호동의 장점 중 하나가 여행, 먹방(먹는 방송) 등 분야에 특화돼있다는 것”이라며 “그런 특성이 나 PD와 원체 잘 맞는다”고 했다.
김 PD가 무한도전을 확장했다면, 여행과 음식 예능의 전성기를 연 나 PD는 재창조의 달인으로 볼 수 있다. 정 평론가는 “나 PD는 익숙한 걸 뒤집어 새롭게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라끼남도 ‘라면을 먹으려 산에 오른다’는 발상 전환이 먹혔던 것”이라고 말했다. 신서유기 파생작 강식당 등 그의 장기인 스핀오프도 이런 맥락에 있다.
나 PD는 유튜브 실험을 최선두에서 이끄는 연출자이기도 하다. 지난 9월 TV 5분 편성과 유튜브 풀버전 공개로 화제를 모은 ‘아이슬란드 간 세끼’에 이어 라끼남도 6분간만 TV 전파를 탄다. 그는 이미 신서유기 시즌1 때 짧은 편집과 B급 감성의 자막 등 요즘 일반적 유튜브 문법으로 자리 잡은 연출을 뽐낸 바 있다.
그렇다면 김태호-유재석, 나영석-강호동 이 두 커플의 전성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전문가들은 최근 리얼리티 예능 트렌드에 견줘 밝은 전망을 내놨다. 정석희 TV칼럼니스트는 “PD와 출연자가 서로를 속속들이 알수록 재밌는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고, 그런 소소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콘텐츠가 되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