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영기업인 중신그룹의 자회사가 잇따라 채권 상환에 실패하는 등 중국 기업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이 커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올해 디폴트 규모는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최근 20년 만에 지방은행이 파산하는 등 부실이 은행권으로 확산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8일 중국 경제 매체들에 따르면 중신(中信)그룹의 자회사인 중신궈안(中信國安)은 지난 16일 20억 위안 규모의 만기 채권 상환에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중신궈안은 이 채권 외에도 지난 4월부터 현재까지 6건의 채권을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 금액이 114억 위안(1조9000억 원) 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신궈안은 1987년 중신그룹 산하 자회사로 설립됐으며, 2014년 국유·민영 혼합소유제 개혁을 통해 민간기업의 투자를 받으면서 중신그룹의 지분은 20% 정도로 낮아졌다.
민간기업들이 가세한 뒤부터 중신궈안은 공격적인 기업 인수를 통해 급속하게 덩치를 불리면서 자산 규모가 2014년 1171억 위안(19조5000억 원)에서 2017년 2100억 위안(35조 원)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돈을 빌려 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빚이 늘어 총부채가 2014년 676억 위안에서 2016년에는 1312억 위안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결국, 부채와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해 급속히 부실화되고 있다. 중신궈안이 어려워지면서 이 회사가 투자한 기업들도 연쇄 부실화될 우려가 제기된다.
중신궈안은 중국 기업 부실화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미·중 무역전쟁 영향 등으로 중국의 경기 둔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업 이익이 줄어 부채 비율이 높은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금융 정보 업체 윈드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12월 17일 사이 174개 회사채에서 디폴트가 발생했고, 총 규모는 1394억 위안(약 23조2000억 원)에 달했다.
올해 채권 디폴드 규모는 지난해 전체의 1210억 위안을 이미 넘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디폴트 위기는 정부와 금융권을 지원을 받기 쉬운 국영기업보다는 민영기업들에 집중되고 있다. 올해 디폴트가 발생한 174개의 채권 중 90%가 민영기업이 발행한 채권이었다.
전문가들은 중국 위안화 채권 디폴트 비율이 1%대 미만으로 당장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을 중심으로 상황이 계속 악화하고 있는데다 중국 민영기업들이 복잡한 연대보증으로 얽혀있어 자금난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연쇄 부실로 이어질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산둥성 기업들의 디폴트 위기를 다루며 “문제는 디폴트 자체가 아니라 기업 간에 서로 빚보증을 서는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금융 부문의 리스크도 높아지면서 ‘고위험’ 등급 은행 비율이 확대되고 있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달 25일 공개한 2019 금융안정보고서에서 4379개에 이르는 은행 등 금융기관 가운데 13.5%에 이르는 586개가 고위험 등급을 받았다고 밝혔다. ‘고위험’은 대부분 지방 도시 및 농촌에 있는 중소 은행이었다.
지난 5월 네이멍구의 소규모 은행인 바오상 은행이 파산해 국유화한 이후 중국의 중소 은행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에서 은행 파산은 2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또 중국 랴오닝성 남부 잉커우의 한 은행이 파산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뱅크런’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중국 최대 국유은행인 공상은행 등이 랴오닝성 남서부의 진저우 은행에 자금을 긴급 수혈했다.
인민은행 보고서는 중국의 가계 부채가 2018년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60.4%까지 높아져 국제 평균 수준에 도달했으며 일부 지역과 저소득 가구에 부채 위험을 드리우고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중국 경제에서 오랫동안 쌓인 문제점이 드러나 금융 위험이 커졌고 경제 성장에도 어려움이 많아졌다”며 “잇따르는 기업들의 채무 불이행 사태가 금융 시스템 전체의 부실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