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위 소금 뿌리는 꼴” 블랙아이스 매뉴얼 유명무실

입력 2019-12-17 17:43
상주-영천 '블랙 아이스' 현장 합동 조사. 연합뉴스

블랙아이스로 인한 연쇄 추돌사고로 4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유명무실한 대응 매뉴얼이 문제로 떠올랐다. 블랙아이스는 강수량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적은 양의 비에도 형성되는 반면, 매뉴얼은 눈·비가 내렸을 때를 기준으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상주영천고속도로는 사고가 발생한 지난 14일 새벽 무렵 염화칼슘 예비 살포를 하지 않았다고 17일 밝혔다. 자체 매뉴얼에 따르면 눈·비 예보가 있는 상태에서 노면 온도가 3도 이하일 때 제설제를 예비 살포하게 되어있는데 이날은 기상청 강수 예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측에 따르면 사고 발생 약 50분 전인 오전 3시57분쯤 이 고속도로 관리 위탁업체 소속 순찰원이 순찰 도중 비를 관측해 교통상황센터에 알려왔다. 일대 기온도 2도 정도로 관측됐고 회사는 차량 7대와 인력 11명을 동원해 염화칼슘 수용액 3만ℓ를 살포하기로 하고 오전 4시 2분쯤 양방향 도로 제설에 착수했다.

회사 측 설명대로라면 매뉴얼상으로는 할 필요가 없는 선제적 대응까지 했는데도 블랙아이스 사고를 막지 못한 것이다.

대구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사고지점과 가장 가까운 관측장비인 소보 자동기상관측장비(AWS)에는 이날 오전 3시42분부터 4시31분까지 강수가 지속해서 감지됐지만 그 양이 미미해 강수량은 아예 측정되지 않았다. 아주 적은 양의 비에도 블랙아이스가 형성되는 현실을 볼 때 지금 매뉴얼은 무용지물인 셈이다.

더구나 대구기상청에 따르면 사고 당시 기온은 영하 1.3도가량으로 측정되는 등 밤새 기온이 영하권이어서 이미 도로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제설 작업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

상주-영천 '블랙 아이스' 사고현장에 남겨진 사고 잔해물. 연합뉴스

유수재 한국교통안전공단 대구경북본부 교수는 “비가 내리기 서너시간 전에 염화칼슘을 뿌리면 결빙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얼고 난 뒤에 염화칼슘을 뿌리면 길이 더 미끄러워진다”며 “얼음 위에 소금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4일 오전 4시43분쯤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상주-영천고속도로 영천 방향 차로에서 화물차 등 차 20여대가 연쇄 추돌하고 불이 나는 사고가 일어난 데 이어 5분 후 4㎞가량 떨어진 반대쪽에서도 10여대가 연쇄 추돌했다.

2곳에서 발생한 추돌사고로 모두 7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다쳤으며, 화물차 등 8대가 불에 타는 등 차 40여대가 파손됐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국무회의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라며 “겨울철 교통안전 대책을 긴급 점검해 눈길과 빙판등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 요인을 줄이고 특히 블랙아이스 현상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 도로 구간부터 우선적으로 안전 대책을 강구해주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이홍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