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속내는 결국 ‘돈’… 중·러, 일부 대북제재 해제 요구

입력 2019-12-17 13:49 수정 2019-12-17 17:26
중·러, 유엔 안보리에 제재 해제 결의안 ‘기습’ 제출
북한 외화 수입원인 ‘동상(銅像)’ 수출금지 해제도 포함
미국, “시기상조” 반대해 대북제재 해제 가능성 거의 없어
중·러, 그래도 결의안 밀어붙일 경우 미국과 충돌 우려


중국과 러시아는 16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일부 대북 제재의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 초안을 기습적으로 제출했다. 북한의 전략적 엄포로 북·미 관계가 위험수위로 치닫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사태 수습을 위해 직접 중재역할을 맡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3주년을 맞아 김일성(왼쪽)·김정일 동사에 헌화하는 북한 군 장병과 근로자들, 학생들의 모습. 중국과 러시아는 16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동상 수출금지를 규정한 대북제재의 해제도 촉구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미국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유엔 안보리를 무대로 대북제재 해제 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러가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안보리 의결 절차상 미국이 끝까지 반대할 경우 대북 제재 해제는 불가능하다.

중·러는 유엔 안보리에 4개 제재의 해제를 요구했다. 특히 중·러가 주장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북한의 속내는 돈이라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졌다. 또 북한이 어떤 대북제재에 가장 고통스러워하는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중·러는 북한과의 물밑조율을 거쳐 요구사항을 결정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북한은 중·러의 입을 빌어 받고 싶은 선물 리스트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일대일 담판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자 유엔 안보리로 전장을 확대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① 해산물·섬유 수출금지 해제 ② 북한 해외근로자 본국 송환 해제 ③ 남북 철도사업, 대북제재 예외 인정 ④ 동상(銅像) 수출금지 해제

중·러는 우선 북한의 해산물과 섬유 수출 금지를 풀어줄 것을 촉구했다. 북한은 2017년 해산물 수출로 2억 9500만 달러(약 3400억원)을 벌어들였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2016년 통계를 보면 섬유는 석탄·광물에 이어 북한의 랭킹 2위 수출품으로, 7억 5200만 달러(약 8700억원)의 외화를 끌어왔다. 북한 섬유의 80%는 중국으로 수출된다.

중·러의 두 번째 요구사항은 북한 해외 근로자들의 송환금지 해제다. 2017년 12월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 실린 내용이다. 이 결의는 해외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들을 24개월 이내에 송환토록 규정했다. 북한 해외 근로자 송환 시한은 오는 22일이다. 유엔 회원국들은 이번 주 안에 북한 근로자들을 모두 돌려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해외에서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들의 임금은 북한의 주요 외화수입원이다. 유엔 인권조사관은 2015년 기준으로 북한의 해외 근로자는 약 5만명이며, 이들이 벌어들이는 외환은 12억 달러(1조 3900억원)에서 23억 달러(2조 67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북한의 해외 근로자들은 대부분 러시아와 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험한 일을 하는 북한 근로자들이 돌아갈 경우 러·중의 경제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중·러는 남북 철도 연결·현대화 사업의 제재 면제도 촉구했다. 남북 철도 사업은 남북 정상이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내용이다. 남북 정상은 동해선·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대북제재에 막혀 진척이 없는 상태다. 철도 사업에 필요한 반드시 물자와 장비가 대북제재로 북한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러는 네 번째 요구사항에서 북한의 동상 수출금지 해제를 촉구했다. 김일성 일가 우상화 작업으로 북한은 거대한 동상 제작에 뛰어난 기술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북한에 동상 제작을 의뢰하는 국가들은 주로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북한은 동상 수출로 한해 평균 수천만 달러(수백 억원)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바실리 네벤자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 신화뉴시스

중·러, 미국 견제 위해 6자회담 재개도 요구

중국과 러시아는 결의문 초안에서 “새로운 북·미 관계를 위해 북·미 사이에 모든 레벨의 지속적인 대화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해법을 찾기 위해 과거 6자 회담 같은 다자협의체의 재개나 신설을 요구하고 나섰다.

북핵 해법을 모색했던 6자회담 참여국은 남북, 미·중·일·러였다. 6자회담 재개도 중·러의 일관된 요구였다. 북·미 양자회담이나 남·북·미 3자회담 틀로 북핵 문제를 접근하다보니, 미국에 비해 자신들의 영향력이 축소됐다는 것이 중·러의 불만이었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중·러가 북한을 위해 대북제제 해제를 요구해주는 대신 북한에 6자회담으로 전환하자는 압력을 넣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바실리 네벤자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결의안에 대한 토론은 17일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반대하더라도 대북제재 해제에 도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에 따라 미국과 중·러의 갈등도 깊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바실리 대사는 “(중·러가 제안한) 대북제재 해제는 북한 핵 프로그램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지 않은 인권 이슈”라고 강조했다. 대북제재를 해제하더라도 북한이 벌어들인 외화가 북한 핵 프로그램에 흘러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차단막을 치고 나선 것이다.

미국 “대북제재 해제는 시기상조”

중·러의 기습공격에 미국이 내놓은 답은 세 가지다. 미 국무부는 중·러가 일부 대북제재의 해제를 요구한 데 대해 “지금은 유엔 안보리가 시기상조인 제재 완화를 고려할 때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관계 전환, 항구적 평화 구축,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들을 향한 외교에 여전히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엔 안보리 회원국들은 북한이 반드시 도발을 억제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의무사항을 준수하며,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일치단결된 목소리로 말해왔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대북제재 완화를 논의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외교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뒤 대북제재를 논의하겠다는 선후 관계를 분명히 했다. 그리고는 중·러를 향해 대북제재 공동전선에서 이탈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안보리에서 기존 대북제재를 해제하거나 완화하려면 새로운 제재 결의를 채택해야 한다. 결의안 채택을 위해서는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하며 15개 상임·비상임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미국이 찬성 입장으로 돌아서지 않는 한 대북제재 해제가 불가능한 것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