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를 놓고 막판까지 자기들만의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고 있다.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는 15일에도 선거법 단일안 마련에 실패했다. 자유한국당은 주말 장외 투쟁에 이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저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거대 양당은 물론 정의당까지 의석수 챙기기에 몰두하면서 선거제 개혁이란 애초의 취지는 사라지고 당리당략만 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4+1 협의체의 선거법 관련 합의안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은 선거법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오른 다른 안건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대해서도 원안을 훼손하는 주장은 수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이런 원칙 하에 16일 3당 교섭단체 간 협의 및 4+1 협의에 나서기로 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각당의 논의가 지나치게 당리당략으로 진행되고 일부 정당은 협의 파트너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나 존중이 없지 않나 생각한다”며 “‘대기업(민주당)이 중소기업(군소정당)을 후려치듯 한다’는 발언 등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 말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한 말이다. 홍 대변인은 “협의의 문은 열려 있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원안대로 표결하는 것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지난 13일까지 4+1 협의체에서 선거법 단일안을 도출해 본회의에 올릴 계획이었으나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지역구 250석, 비례대표 50석, 정당득표 연동률 50%에는 합의했으나 ‘연동률 캡’과 석패율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민주당이 연동률 50%를 적용할 비례대표 의석수를 50석 중 30석으로 제한하는 ‘연동률 캡’을 씌우자고 주장하자 정의당 등이 반발한 것이다. 지역구에서 아깝게 떨어진 차점자를 비례대표 후보로 올려 구제하는 석패율제 적용 숫자를 놓고도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은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4+1 협의체가 합의점에 접근했다며 추가 협상을 통해 16일 본회의에 선거법은 물론 검찰 개혁법 등도 상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등 4+1 협의체 당사자들과의 개별 접촉에도 불구하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결국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런 협상 상황을 보고받은 뒤, 개혁 취지에 맞게 원안에서부터 다시 협상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문희상 국회의장이 “16일 오전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한국당의 반발이 격화되고 있다. 한국당은 16일 본회의가 열리면 회기 결정의 건부터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방침이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15일 기자간담회에서 “문 의장이 회기 결정의 건과 관련해 국회법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회기를 결정한다면 형사고발하겠다”고 경고했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 마련에 힘을 쏟는 한편 주말에 민주당과 물밑 접촉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당내 강경 기류가 워낙 강한 데다 입장차가 커서 실제 합의안이 마련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나래 심희정 신재희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