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총리, ‘브렉시트 총선’ 승리했지만 갈길은 첩첩산중

입력 2019-12-15 17:19 수정 2019-12-15 17:55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4일(현지시간) 총선 승리 후 잉글랜드 북동부 더럼 지역을 방문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잉글랜드 북동부는 전통적으로 노동당 지지 지역이었지만 이번에 대거 보수당을 선택했다. AP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도박은 성공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총선’으로 불린 영국의 조기 총선은 집권 보수당의 역대급 승리로 끝났다. 3년 반에 걸친 브렉시트 혼란을 끝내긴 했지만 완전한 브렉시트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지난 12일 총선에서 하원 650석 가운데 과반을 훌쩍 뛰어넘는 364석을 차지했다. 반면 노동당은 203석으로 불과 154석을 얻었던 1935년 선거 이후 84년 만에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이어 스코틀랜드 국민당(SNP) 48석, 자유민주당 11석,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 8석, 북아일랜드 신페인당 7석, 웨일스 민족당 4석, 북아일랜드 사회민주노동당(SDLP) 2석, 녹색당 1석 순이었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브렉시트에 피로감을 느끼는 많은 유권자가 ‘브렉시트 완수’를 내건 보수당에 표를 던졌다”면서 “특히 보수당은 반이민 정서를 내세워 노동당의 텃밭이었던 레드월(Red Wall), 즉 잉글랜드 중북부 석탄·철강·제조업 밀집 지역에서 승리했다”고 지적했다. 브렉시트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보였던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보수당은 이제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존슨 총리는 예고한대로 크리스마스 전 새 의회에서 합의안을 통과시키고 내년 1월 말까지 유럽연합(EU) 탈퇴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20년 말까지인 브렉시트 전환(이행)기간 동안 EU와 무역협정을 포함한 미래관계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행기간에 영국은 현재처럼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 잔류에 따른 혜택을 계속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외신은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브렉시트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며 존슨 총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만만치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2020년 말까지 영국이 EU와 무역 협상, 분담금 등 새 미래관계를 합의하는 동시에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 등 새로운 협정안을 마련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EU 측 브렉시트 협상 대표인 미셸 바르니에 EU 수석대표는 “2020년 말까지 영국-EU FTA에서 포괄적 합의에 이르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EU는 총선 결과가 나온 뒤 존슨 총리에게 “무역 협상 등 미래에 대한 설계는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협상이 진척되지 않을 경우 영국은 2020년 7월 1일까지 EU에 전환 기간 연장을 요청할 수 있다. 양측이 동의한다는 것을 전제로 전환 기간을 1~2년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다. 다만 존슨 총리는 선거 이전부터 전환 기간 연장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2020년 안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하더라도 EU에서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즉 ‘노딜(합의 없는) 브렉시트’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언론은 “영국과 EU 사이에 합의가 무산되고 전환기간 연장마저 불발되면 영국이 2021년 1월 1일 노딜 브렉시트로 내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존슨 총리의 새로운 브렉시트 합의안이 대부분의 품목에서 관세를 ‘제로(0)’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북아일랜드 이외에서는 식품과 공산품 등의 기준에 대해 EU와 별도의 제도를 두기로 한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결국 새로 발생하는 통관 절차나 각각의 규제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상품의 비용 상승이 우려된다. 노딜 브렉시트를 피한다고 해도 영국에 미칠 경제적 충격파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하나의 영국’을 지켜야 하는 과제도 존슨 총리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AP통신은 “이번 총선에서 존슨 총리가 이겼지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연합 왕국의 미래는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분리독립을 주창한 SNP는 스코틀랜드의 59석 가운데 48석을 거머쥐었다. SNP는 그동안 영국이 브렉시트를 단행할 경우 독립해서 EU에 남겠다는 입장을 천명해 왔다. 니콜라 스터전 SNP 대표는 총선 직후 “다음주 제2의 분리독립 주민투표 추진을 위한 보고서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