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전쟁 17개월 만에 이룬 미·중 1단계 무역 합의 내용 살펴보니

입력 2019-12-14 04:59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정상회담을 위해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 협상에 합의를 이뤘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7월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해 첫 관세 폭탄을 때려 본격적인 무역 전쟁을 시작한 지 약 17개월 만이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3월 중국제품에 대한 관세부과 계획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을 기준으로 하면 21개월 만이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재무부, 외교부, 상무부, 농업농촌부 등 중국 관계부처는 현지시각으로 13일 밤 11시 베이징 국무원 신문판공실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1단계 무역 합의 문건 내용에 서로 동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회견에서 미국 무역 협상에 각 부처를 대표해 참여한 차관급 당국자들인 닝지저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부주임, 랴오민 재중부 부부장, 정쩌광 외교부 부부장, 한쥔 중국 농업농촌부 부부장, 왕서우원 상무부 부부장이 참석해 ‘1단계 무역 협상에 관한 성명’에서 “중미 쌍방이 평등과 상호존중의 원칙 하에서 1단계 무역 합의문에 관한 의견의 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중국과 매우 큰 규모의 1단계 합의에 동의했다”며 “그들은 많은 구조적 변화와 농산물, 에너지, 제조품 등 여러 많은 것들의 대량 구매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의) 25%관세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며 “나머지 대부분에는 7.5%가 매겨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이날 중국과 1단계 무역 합의를 도출함에 따라 오는 15일 예정돼 있던 대중 추가 관세를 철회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일부 중국산 제품에 매겨졌던 15% 관세를 절반인 7.5%로 낮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미국은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1200억 달러 규모 상품엔 15% 관세를 매겨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합의를 도출했다는 사실 때문에 12월 15일 예정된 처벌 관세를 매기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2020년 대선 이후까지 기다리지 않고 2단계 합의를 위한 협상을 즉각 개시할 것이다. 이는 모두에게 굉장한 합의다. 고맙다”고 밝혔다.

앞서 중국이 밝힌 합의문 전문엔 지적재산권과 기술양도, 식품과 농산물, 금융서비스, 환율 투명화, 무역 확대, 양자 평가 및 분쟁 해결, 최종조항 등 9개 장으로 구성됐다. 왕서우원 중국 상무부 부부장은 이에 대해 “개혁개방 심화라는 방향성과 질 높은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내부 필요성에 일치한다”며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경영 환경 개선, 시장 접근 확대, 외국 기업을 포함한 중국 내 모든 기업의 권익 보호, 중국기업의 미국 내 보호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단계적으로 중국산 수입품의 추가관세를 철폐하기로 약속했다”고 한 왕 부부장은 “(관세 변화 방향도) 증가에서 감소로 바꾸기로 약속했다. 양측은 합의를 필요한 절차를 빨리 끝내고 정식 협의를 위한 구체적인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도 했다.

왕 부부장은 또 “미·중은 상업적 비밀 보호, 의약품 관련 지적 재산권, 특허 유효기간 연장, 지리적 표시, 전자상거래 플랫폼상 해적 또는 가짜 제품의 제조와 수출방지, 악의적 상표 등록 방지, 지적 재산권 관련 사법 집행 및 절차 강화 등 지적 재산권 강화에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랴오민 재정부 부부장은 “양측이 1단계 합의를 달성함에 따라 미국이 이미 부과됐거나 부과될 예정이었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일부 취소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중국도 오는 15일부터 시행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방안을 상응해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2단계 무역협상과 관련해서는 그는 “1단계 합의가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지금은 1단계 합의를 달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그는 또 “후속 협상이 언제부터 진행되는지는 양측 실무진 간 논의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닝지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은 “중국이 양질의 시장 경쟁력을 갖춘 미국 농산물을 추가 조달할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합의 내용과 (조달) 규모는 조만간 발표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어 중국은 이에 대해 ‘상당히(Significantly)’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들에게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구매가 500억 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무역대표부도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역사적이며 이행 가능한 1단계 무역 협의를 도출했다”며 “이는 지적재산권, 기술이전, 농업, 금융 서비스, 통화, 외환 등의 영역에서 중국의 경제‧교역 체제에 구조적 개혁과 여타 변화들을 요구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또 “1단계 합의에는 앞으로 몇 년간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를 상당량 추가 구매하겠다는 중국의 약속도 포함돼 있다”며 “중요한 것은 이번 합의가 신속하고 효과적인 이행과 집행을 보장하는 강력한 분쟁 해소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무역법 301조에 따를 조치를 상당한 방식으로 수정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301조는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로 미국의 무역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경우 보복을 허용한다는 내용으로 대중 관세 부과의 근거가 돼 왔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은 의미 있으면서 완전하게 이행 가능한 구조적 변화를 달성하고 미·중 무역 관계의 재균형을 시작할 수 있도록 1단계 합의를 마무리 짓는 데 집중해 왔다”며 “이번에 전례 없는 합의는 매우 중요한 목적들을 달성했다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오늘 중국과의 1단계 합의 발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의제 진전을 위한 또 다른 중요한 발걸음”이라며 “대통령의 리더십 덕분에 이 획기적인 합의는 보다 균형 잡힌 무역 관계, 미국 노동자와 기업을 위한 보다 공평한 경쟁의 장을 향한 중대한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10월 고위급 협상을 진행해 무역 갈등은 완화할 제한적 1단계 합의를 하기로 했었다. 미국은 이를 계기로 10월 추가로 시행 예정이던 대중 관세 인상을 보류했고 중국은 대규모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당시 합의는 미국이 기존에 부과 중이던 대중 관세를 유지한 데다 12월 15일 예정된 추가 관세도 철회하지 않았고, 중국 역시 기술 이전 강요와 자국 기업 보조금 문제 등에 확실한 개선이 없다는 한계를 노출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종적으로 서명할 합의문을 마련하기 위해 막바지 협상을 진행했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