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교황청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사용한다며 모금한 막대한 기부금 중 단 10% 정도만 실제 구제금으로 쓰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기부금의 대다수는 교황청의 방만한 재정운용에 따른 적자를 메꾸는 데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시간)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베드로 성금’(Peter’s Pence)이라 불리는 이 특별헌금의 운용 실태를 고발했다. 베드로 성금은 전세계 신도들이 로마 교황청에 자유롭게 바치는 헌금이다. 매년 평균 약 5000만 유로(약 663억원)이 걷힌다. 주교들은 신자들에게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돕자며 이 성금을 모집한다. 실제 미국 가톨릭 주교회는 홈페이지에 베드로 성금의 목적을 ‘전쟁과 억압, 자연재해, 질병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재정적 수단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바티칸의 베일에 싸인 재정관리는 이전부터 논란이 되어왔다. 교황청의 일부 고위 관료들만이 기금 명세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베드로 성금의 자금 유용 사실이 알려질 경우 프란치스코 교황 치하 바티칸에 대한 신뢰성이 깨지게 될까봐 우려하고 있다. 특히 임기 초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촉구하며, 교회의 사명은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대변하는 데 있다고 강조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으로서는 특히 뼈아픈 의혹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교황청은 현재 불투명한 런던 부동산 투자 스캔들로도 발목이 잡혀 있다. 베드로 성금 등의 관리를 맡는 교황청 행정처 국무원이 런던 부유층이 거주하는 첼시 지구 고급 빌딩에 불법 투자를 했다는 의혹이다. 교황청 경찰이 이와 관련 지난 10월 국무원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교황청 관리들은 문제가 된 투자에 베드로 성금의 일부가 사용됐다고 보고 있다.
WSJ는 교황청의 재정 문제가 계속 터지고 있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부패, 낭비 등에 대한 내부 개혁 작업이 더디게 진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베드로 성금의 기부액은 최근 수년간 눈에 띄게 감소했다. 교황청의 금융 투명성과 교회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문에 대한 평신도들의 우려가 기부금 축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7년 6000만 유로(약 793억원)이었던 기부금은 지난해 5000만 유로로 줄었들었다. 올해도 감소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