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아니면 안됐다”… ‘남산의 부장들’이 돌아본 ‘그날’

입력 2019-12-12 12:40
배우 이병헌이 12일 서울 강남구 CGV압구정에서 열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 제작보고회에서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이병헌이 안 하면 이 작품을 접으려고 했다. 그 정도로 ‘이병헌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은 가감없는 속내를 털어놨다. 12일 서울 강남구 CGV압구정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그는 “이병헌은 말이 필요 없는 배우다. ‘내부자들’에 이어 두 번째 함께했는데, 그때보다 더 치열하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극 중 이병헌은 박통의 곁을 지키던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역을 맡았다.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의 안상구처럼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고 감정을 수렴하고 절제하는 캐릭터였다. 그러면서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혼란을 느끼게 해야 했다.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훌륭하게 해줬다”고 극찬했다.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제2의 권력자였던 중앙정보부장이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사건을 벌이기 전 40일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병헌은 “시나리오를 읽고 뜨거워짐을 느꼈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지만, 장르적으로 굉장히 세련된 느와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걸출한 배우들이 함께했다. 이성민이 1961년 5.16 군사정변부터 1979년에 이르기까지 독재정치를 편 ‘박통’을 연기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극화한 인물이다. 곽도원은 권력의 정점에서 하루아침에 밀려난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 역을, 이희준은 대통령 경호실장 곽상천 역을 각각 소화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극 중 장면. 쇼박스 제공

이병헌은 “적지 않은 시간 활동을 해왔음에도 다들 처음 호흡을 맞춰본 배우들이었다”며 “어떻게 이런 배우들이 있을 수가 있을까 놀랐다. 나도 영화를 통해 늘 봐오던 팬이었지만 막상 호흡 맞춰보니 섬뜩할 정도로 잘하더라. 연기 잘하는 분들과 함께할 때의 묘한 흥분이 있다”고 흡족해했다.

원작은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다. 1990년부터 동아일보에 2년 2개월간 연재됐으며 단행본은 한·일 양국에 발매돼 당시 52만부가 판매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민호 감독은 “제대 이후 우연히 원작을 읽었는데, 한국 근현대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더라”고 회상했다.

그는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는데 운 좋게 기회가 주어졌다”면서 “다만 책 내용 전부를 영화에 담기엔 방대했다. 그 가운데 중앙정보부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40일간의 이갸기를 다뤘다. 사건들은 논픽션이고, 이면에 있는 인물들 간의 관계성과 심리는 영화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적잖은 부담감이 따랐다. 이병헌은 “실제 사건과 실존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며 “모든 의도가 왜곡되거나 실제 있었던 일이 왜곡되는 상황에 대해선 많이 경계를 했다”고 이야기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우민호 감독(오른쪽)이 12일 서울 강남구 CGV압구정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역사적 사건을 다루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실제 감정, 관계들을 깊이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되도록 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찾아보고 계속 공부를 해가며 연기 준비를 했다. 촬영 끝날 때까지 그렇게 해야만 했던 특이한 케이스였다”고 덧붙였다.

미투 논란 이후 2년 만에 공식석상에 선 곽도원은 “이런 자리가 오랜만”이라며 멋쩍게 입을 뗐다. 이병헌과의 호흡에 대해선 “쏟아내는 감정들이 잘 깎인 다이아몬드 같았다. 보통 배우 본인의 모습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그 인물로만 보여 미치겠더라. 신기하고 감탄스러웠다. 많이 배웠다”고 치켜세웠다.

이희준은 실존인물과의 ‘싱크로율’을 위해 25㎏을 증량했다. 그는 “감독님도 ‘강요는 안 하지만 찌면 좋겠지’ 하셔서 찔 수밖에 없었다. 자는 시간 이외에는 계속 먹기만 했다”고 웃었다. 우민호 감독은 “배우가 25㎏를 찌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뜻 그렇게 해줘서 고마웠다”고 전했다.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과 그 이전 40일간의 흔적을 샅샅이 좇는다. 한국과 미국 프랑스를 오가는 로케이션 촬영이 진행됐다. 이병헌은 “몇 달 동안 우리가 현장에서 느낀 긴장감을 관객들에게도 전해진다면 훌륭한 영화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내년 1월 개봉.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