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끔찍한 일” 경고하자 감시비행…美정찰압박 전략

입력 2019-12-05 18:55
北총참모장 경고 다음 날 공군 ‘리벳 조인트’ 대북정찰
北도발 억지 위해 美정찰기 동선 의도적 노출 분석
국방부 부차관보 “대북 군사옵션 철회된 적 없어”
일각선 방위비 분담금 증액 관련 주장도

미군의 정찰기 RC-135W ‘리벳 조인트’. 미 공군 홈페이지

미국이 연일 한반도 상공에 정찰기를 띄우며 대북 감시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박정천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이 “무력을 사용하는 일은 미국에 있어서 매우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로 다음 날인 5일 미 정찰기가 대북 정찰비행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기 이동을 모니터링하는 민간 트위터 계정 ‘에어크래프트 스폿(Aircraft Spots)’에 따르면 미 공군 정찰기 RC-135W ‘리벳 조인트’ 1대는 이날 경기도 남부 상공 3만1000피트(약 9.4㎞)를 비행했다. 이 정찰기는 신호·통신 정보를 수집해 북한의 미사일 도발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

미군은 지난달 28일 북한의 ‘초대형 방사포’ 시험발사를 전후로 대북 감시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초대형 방사포를 쏘기 전 RC-135V에 이어 E-8C ‘조인트 스타스’, EP-3E 정찰기를 이틀간 수도권 상공에 잇따라 띄웠다. 지난달 30일 ‘드래곤 레이디’로 불리는 U-2S를, 지난 2일 RC-135W 정찰기를 한반도 상공에 비행시켰다. 지난 4일엔 잠수함 탐색이 가능한 해상초계기 P-3C가 정찰에 나섰다.

일부 군사 전문가는 미군이 의도적으로 정찰기의 위치식별 장치를 켜 정찰비행을 노출하고 있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북한이 스스로 설정한 연말 비핵화 협상 시한을 앞두고 군사 도발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압박 전략이라는 관측이다. 미군 정찰기는 매달 사전에 정해진 비행 계획에 따라 정찰 임무를 수행한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도발 위협이 높아질 때에는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정찰기가 뜨는 등 정찰 활동이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군 일각에선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군 소식통은 “미군 정찰자산이 대북 감시에 자주 활용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한국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메시지를 내보내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고성 발언을 주고받고 있다. 지난 3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주영 미국대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무력을 쓸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그는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한 군대를 갖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라며 “군대를 쓰지 않기를 원하지만, 만약 그래야 한다면 이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비핵화 합의를 준수해야 한다. 이를 지켜볼 것”이라고도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 여사, 군 간부 등과 함께 백두산에 올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그다음 날 북한 관영매체는 김 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오르는 모습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의 백두산 등정에 동행했던 박정천 총참모장은 담화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거론하며 “우리 무력의 최고사령관(김 위원장)도 이 소식을 매우 불쾌하게 접했다”고 말했다. 북한 군부 서열 2위인 박 총참모장은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하이노 클링크 미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는 대북 군사 옵션이 철회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클링크 부차관보는 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한미동맹재단이 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관련 콘퍼런스에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의 무력 사용 가능성 발언에 대한 질문에 “군사적 옵션은 결코 철회된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군사력은 억지력으로서 기여하기 위해 존재한다”며 “안정화군(stabilizing force)으로서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