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VIP’는 ‘불륜’을 그려야 했던 걸까” [리뷰]

입력 2019-12-01 16:52 수정 2019-12-01 18:20
SBS 제공


상위 1%들의 비밀을 들추겠다며 나선 뻔한 드라마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면에서 이 극은 유별한 점이 있다. 파죽지세로 11%(닐슨코리아)대까지 오른 ‘VIP’(SBS) 얘기다.

VIP는 백화점 내 로열 고객들을 관리하는 VIP전담팀 직원들의 얘기다. 백화점은 돈을 향한 욕망이 가장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상징적 공간인 셈인데, 의의로 ‘부자는 이렇게 산다’는 뜬구름 같은 얘기는 극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드라마가 끈덕지게 파고드는 건 다름 아닌 ‘불륜’이다.

극은 팀장 성준(이상윤)이 아내이자 같은 팀 차장 정선(장나라) 몰래 부서 직원과 밀애 중임을 계속 암시한다. 이런 시퀀스는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음악과 합쳐지면서 대단한 긴장감을 부여하는데, 온라인에선 성준의 진짜 내연녀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현아(이청아) 미나(곽선영) 유리(표예진)가 그 후보다.

반환점을 돈 극은 불륜 상대로 유리를 지목하고 있으나 이는 함정일 것으로 보인다. 부사장의 불륜 상대와 만나 관계를 몰래 마무리 짓는 비밀 업무를 할 때면 구토감에 시달리는 성준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게 미심쩍다. 그의 의심스러운 행동은 정선에게도 말 못 할 업무의 연장선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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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궁금한 건 백화점을 드나드는 상류층의 이야기에서 왜 하필 불륜을 앞세우고 있는지다. 극에서 불륜은 윤리를 벗어난 재벌들의 행동과 돈의 논리를 탐구하는 코드로 활용된다.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불륜을 관리하는 팀까지 둔 부사장은 내연 상대에게 1억짜리 수표와 비밀유지계약서를 건넨다. 극 속 재벌들에게 “세컨드”를 두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처럼 비치는데, 만약 성준이 불륜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그는 임원승진이라는 계층 상승의 욕망 때문에 휘둘리고 있는 한 인간형이 된다.

자본 유무와 직업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현실처럼 불륜은 극에서 편견을 만드는 핵심 트리거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는 각 등장인물의 비밀로 표현된다. 가령 가난한 유리는 부사장과의 내연으로 전담팀에 들어앉았다는 편견에 시달린다. ‘팀에 당신 남편의 여자가 있다’는 문자를 받은 정선이 팀원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팀의 균열은 점차 거대해진다. 결국 극은 편견이 만드는 비극을 ‘불륜’이라는 장치를 빌어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현아의 말을 빌리자면 현실은 “갑과 을이 돌고 도는” 세계다. ‘SKY 캐슬’이 상위 1% 학부모 삶으로 들어갔다면, VIP는 돈과 밀접한 평범한 이들이 시장 논리 앞에서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살핀다. “비밀이 드러났을 때 등장인물들은 비로소 위로를 얻는다”는 극 소개가 암시하듯 VIP는 우리가 모두 서로의 VIP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여타 치정극과 달리 불륜의 선정성에 매몰되지 않는 점도 극의 남다른 의미 중 하나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