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만의 위기’ 맞은 정유업계, IMO2020로 ‘터닝포인트’ 준비하는 SK에너지

입력 2019-12-01 15:13

18년만에 ‘마이너스 마진’을 기록한 정유업계가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환경규제인 ‘IMO2020(선박연료유 황 함량 규제를 기존 3.5%에서 0.5% 미만으로 강화하는 조치)’을 터닝포인트로 삼아 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IMO2020에 대비해 SK에너지는 국내 정유사 중 가장 먼저 저유황 선박유 생산을 주 목적으로 한 대규모 탈황 설비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27일 울산 중구에 위치한 SK에너지 울산 CLX를 찾았다. 1조원이 투입된 거대 사업 프로젝트인 감압잔사유 탈황설비(VRDS)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는 최근 10년 간 SK에너지가 진행한 사업 중 가장 사업비 규모가 크다. 국내 4대 정유사 중 저유황유만 별도로 생산하는 설비는 VRDS가 처음이다.

완공을 한달남짓 앞두고 현장의 작업자들은 각 공정을 연결하는 배관과 보온재 등을 설치하며 막바지 작업으로 분주했다. 복잡하게 얽힌 파이프관 사이로 보이는 VRDS는 8만2644여㎡ 부지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였다.

VRDS는 2017년 11월부터 건설을 시작했다. 당초 완공 일정보다 3개월가량 일찍 공사를 마칠 예정이다. 1월 완공 후 시험가동을 거치고 내년 3월부터 하루 4만 배럴에 달하는 저유황유를 생산하게 된다. VRDS는 원유로 휘발유, 경유, 납사 등을 생산해내고 남은 중질유에서 황을 분리해 저유황유를 만든다. 이렇게 분리한 황은 단순 처리하지 않고 회수해 아스팔트, 석유화학 제품 생산 업체 등에 판매한다.

SK에너지가 탈황 공정에 감압잔사유(VR)를 사용한 것은 업계에서도 새로운 시도다. SK에너지 측은 “보통 상압잔사유(AR)로 저유황유를 만드는데 감압잔사유(VR)를 사용한 공정은 처음”이라며 “그동안 VR은 석유제품을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로 아스팔트에 주로 쓰였으나 이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IMO2020 시행은 18년 만에 ‘마이너스 마진’으로 위기를 맞은 정유업계의 구원투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이너스 마진은 석유 제품을 팔고 남은 마진이 원가 보전도 채 되지 않아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지난달 27일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마이너스 0.6달러를 기록했다. 통상적인 손익분기점 가격은 배럴당 3~4달러다.

업계 관계자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수요는 둔화됐는데 3분기 정비를 마친 글로벌 정유사들이 제품 공급량을 늘리면서 마진이 급락했다”며 “IMO2020 시행을 앞두고 고유황유인 벙커C유의 가격이 절반 가까이 떨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PIRA 등 글로벌 시장조사업체들은 2020년 이후 대체 돼야 하는 선박용 고유황유 규모가 하루 350만 배럴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 중 56%가 저유황유나 선박용 경유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된다. SK에너지도 VRDS로 연간 2000억~3000억원의 추가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