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기 없는 北상선 ‘NLL 17시간’ 침범 미스터리

입력 2019-11-28 17:06 수정 2019-11-28 18:56
함포 16발 경고사격한 뒤에야 “해주로 가겠다” 응답
中선박 오인됐다가 소청도 남방 진입 후 ‘北 상선’ 확인
軍 “의도적 침범 아닌 우발적 상황”
적재품은 확인 못해
해군 함정이 지난 6월 동해상에서 표류 중이던 북한 선박을 구조해 예인하는 모습. 합참 제공

북한 상선 1척이 지난 27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17시간 침범한 후 되돌아갔다. 국적기도 달지 않은 500t급 이 상선에 적재된 물품이 무엇인지 확인되지는 않았다. 북한 상선이 NLL 이남 소청도 아래까지 들어오고 경고사격을 16차례 받은 후에야 “해주항으로 들어가겠다”고 밝힌 점도 미스터리다. 군 일각에서는 “북한이 NLL을 무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 상선 1척은 지난 27일 오전 5시50분쯤 서해 NLL 이북 중군 어선들이 모여 있던 해상을 통과해 남하했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해군 전탐감시대 레이더에 남하하는 이 상선이 처음 포착됐다. 상선이 백령도 북서쪽에서 NLL을 넘은 시점은 오전 6시40분쯤이었다. 군 당국은 이 상선을 중국 선박으로 오인했었다. 합참 관계자는 28일 “백령도 전탐감시대의 고성능 영상감시체계와 해경정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처음엔 중국 선박으로 추정됐다”며 “백령도 북서쪽 해역은 중국 선박들이 자주 다니는 해역”이라고 말했다.

해군 호위함과 초계함, 고속함이 현장으로 이동해 북한 상선을 추적·감시했다. 북한 상선에는 국적기가 게양돼 있지 않았으며 배 이름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낮 12시30분쯤 소청도 남쪽 해상에서 북한 상선이라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해군 호위함이 접근해 북한 상선의 조타실 유리창 위에 적혀 있는 국제해사기구(IMO) 선박식별번호를 확인, 소속을 파악한 것이다.

북한 상선은 10차례 이상 국적을 확인하는 한국군의 ‘통신검색’에 응하지 않았다. 낮 12시40분쯤 함포로 경고사격을 16차례 한 직후 북한 상선은 “기관고장이 났고 날씨가 안 좋아서 해주항으로 들어간다”고 응답했다.


군은 북한 상선에 적재돼 있던 물품을 확인하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날씨가 안 좋고 기관 고장이 나서 해주항으로 들어가겠다는 내용이 교신됐기 때문”이라며 “군 입장에선 북한 선박으로 확인한 후 작전절차에 따라 경고통신과 경고사격, 퇴거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관고장 등으로 NLL을 넘어왔으며 뒤늦게나마 퇴거 조치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북한 상선을 나포해 조사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날씨는 파고 2.5m에 풍속 20노트(시속 37㎞)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고속정이 뜨기 어려운 날씨였다. 북한 상선이 기상 악화로 항해에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은 크다. 그럼에도 북한 상선이 NLL 침범 이후 곧바로 북쪽으로 방향을 돌리지 않고 소청도 남쪽으로까지 이동한 데에는 의문 부호가 달린다.

북한 상선은 전날 밤 11시30분 서해 NLL 연장선 밖으로 나갔다. NLL에 들어온 지 17시간이나 지나서야 빠져나간 것은 북한 상선이 느린 속도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군 관계자는 북한 상선 항로에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에 “처음 북한 선박이 포착됐을 때 10노트(시속 18.5㎞)로 기동하다가 4노트(시속 7.4㎞) 정도로 속력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북한 상선이 기관고장으로 인해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북한이 NLL 무력화를 시도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군 관계자는 “의도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우발적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한 상선이 남측 통신검색에 응답하지 않았던 데 대해선 “확인되지 않은 외국국적 선박이 응답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다른 관계자는 “북한 상선은 우리 영해를 침범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