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56)가 미국 측에 내년 4월 총선에 임박해서 북미정상회담을 열어선 안 된다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이 27일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한국당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 회담 일정을 고려해달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어느 나라 소속이냐” “한반도 평화보다 당리당략이 우선할 수 있느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복수의 한국당 의원들은 나 원내대표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지난 방미 기간 중에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에게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총선이 있는 내년 4월 임박해서 북미정상회담을 열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나 원내대표는 자신의 요청에 비건 대표가 “알고 있다”고 말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말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의원들은 나 원내대표가 지난 7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같은 취지의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고도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의총에서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이날 오후 입장문을 통해 해당 발언 일부를 인정했다. 그는 미국 측에 내년 총선 전에 북미정상회담을 열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이날 입장문을 내고 “3차 미북 정상회담마저 총선 직전에 열릴 경우 대한민국 안보를 크게 위협할 뿐 아니라 정상회담의 취지마저 왜곡될 수 있다”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금년 방한한 미 당국자에게 그러한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 정상회담은 한국당도 환영한다. 그러나 2018년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열린 1차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외교·안보를 포함해 모든 것을 내년 총선에 올인하고 있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의 입장문은 그가 이날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최근 미국 방문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를 만나 내년 총선을 전후해 북미 정상회담을 열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발언했다는 한 언론 보도를 반박하면서 나온 것이다.
나 원내대표는 “(올해 7월 방한한)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여러 걱정을 이야기했던 것을 (이번에 만난) 비건 특별대표가 기억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 볼턴 보좌관을 만나서 한 발언에 대해서 인정한 것이다.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나 원내대표는 이날 추가 입장문을 내고 “미 당국자에게 미북 정상회담을 총선 전에 열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재차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도저히 제 정신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북미 대화는 한반도 평화를 판가름할 중차대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나 원내대표는 도대체 어느 나라 소속인가. 당장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하고 정치의 영역에서 발을 떼기 바란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이재정 민주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경악할 일”이라며 “어떻게 한반도 평화보다 당리당략이 우선할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맞는지 묻고 싶다”며 나 원내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국민의 안위와 관련된 일조차도 ‘정쟁의 도구’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역사의 죄인이 되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자신의 말을 거둬들이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