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에도 어김없이 ‘푸틴 달력’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년과 달리 웃통 벗은 모습이 없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사진들을 담은 푸틴 달력은 러시아 대통령실 크렘린궁의 디자인 승인을 받아 전 세계적으로 팔리는 푸틴 기념품이다.
워싱턴포스트(WP) 등 해외 언론은 26일(현지시간) 2020년 푸틴 달력 발매 소식을 보도하면서 웃통을 벗고 마초적인 남성성을 강조하던 예년과 달리 정장 차림으로 정상 외교에 몰두하는 사진이 주를 이뤘다고 보도했다.
2019년 달력의 경우 푸틴 대통령이 웃통을 벗고 남성성을 한껏 과시하는 사진이 석 장이나 실렸지만 2020년 달력에는 웃통을 벗은 사진이 한장도 들어있지 않다. 2019년엔 1월 화보부터 웃통을 벗은 채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 있는 푸틴의 모습을 담았다. 이에 비해 2020년 달력의 화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향해 엄지를 치켜든 모습,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리무진으로 이동하는 모습,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환담하는 모습 등 정상 외교 현장의 푸틴을 주로 담았다. 스포츠나 아웃도어 활동을 하는 모습을 담은 달력도 있지만 주력 제품이 아닌데다 예년과 달리 웃통을 벗지 않았다.
푸틴 달력은 크렘린궁 승인을 받아 팔리는 만큼 이미지 선전 활동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2019년 달력이 강하면서도 친근한 국가지도자로서 면모를 강조하는 것이었다면 2020년 달력은 강대국 지도자로서 국제사회의 영향력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유진 루머 러시아·유라시아 프로그램 단장은 WP에 “러시아는 강대국이고 힘의 중심축 중 하나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푸틴 대통령은 시리아 사태 등에 적극 개입하며 중동에서 중재자로서 입지를 대폭 강화했고, 아프리카와 남미 등에서도 영향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주요 공략 대상은 서방과 대립하거나 관계가 불편해진 전체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다. 루머 단장은 “러시아는 이들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민주주의 결핍을 비난하지만 러시아는 당신의 폭정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의 국제사회 리더십을 부각하는 것은 대외적 이미지 메이킹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면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WP는 평가했다. 최근 연금 개혁 등으로 푸틴 대통령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대외정책에 관해선 높은 지지를 받는다.
푸틴 달력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꽤 팔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6년 발행된 달력은 완판된 바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