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콕 찝은 ‘민식이법’… 이번엔 속도내는 국회

입력 2019-11-26 16:12 수정 2019-11-26 16:39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신속한 법안 처리를 주문한 어린이 교통안전 관련 입법에 국회가 속도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보호구역 내 어린이 사망자 ‘0(제로화)’를 목표로 관련 법안을 처리하고 예산 지원도 확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민주당과 정부는 26일 당정 협의를 열고 ‘민식이법’을 비롯해 국회에 계류된 어린이 안전 관련 법안을 조속히 처리하기로 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이 5년간 34명에 이른다”며 “교통법안 처리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당정은 스쿨존의 과속카메라와 신호등 설치를 위해 2020년 예산안에 1000억원 예산을 증액키로 했다. 또 스쿨존에 무인카메라 800대, 신호등 1만1260개를 3년 동안 차례로 설치하도록 했다. 김계도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정부는 어린이 보호구역 1만1000개를 지정하고, 보호구역 내 어린이 사망 사고 제로화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며 “민주당도 어린이 교통안전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정부의 노력에 힘을 보태 달라”고 말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앞으로 단 한 명의 어린이도 희생돼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경찰청도 강력한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어린이 교통안전 관련 법안은 6개에 이른다. 2016년 표창원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인이법’은 3년 넘게 소관 상임위원회에 머물러있다. ‘해인이법’은 2016년 4월 경기도 용인에서 이해인(당시 5세)양이 차량에 치인 후 후속 조치가 늦어져 숨진 일을 계기로 발의됐다. 응급조치 등 어린이 안전에 관한 기본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토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2016년 7월 특수학교 차량에 어린이가 방치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어린이 통학버스 내외부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한음이법’(권칠승 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 2017년 10월 주차된 차량이 경사면을 타고 굴러 내려와 최하준(당시 4세)군이 세상을 떠난 계기로 경사진 구역 내 미끄럼방지 조치를 의무화한 ‘하준이법 1탄’(민홍철 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 ‘하준이법 2탄’(이용호 무소속 의원 대표 발의)도 계류 중이다. 2019년 5월 한 사설 축구클럽 승합차가 교통사고를 내 김태호·정유찬(당시 7세)군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어린이가 탑승하는 모든 통학 차량을 신고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태호·유찬이법’(이정미 정의당 의원 대표 발의)도 국회에 제출돼 있다.




이처럼 길게는 3년간 국회에 계류된 채 잊힐 뻔했던 어린이 교통안전 관련 법안이 재조명된 계기는 ‘민식이법’(강훈식 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이었다. 지난 9월 11일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김민식(당시 9세)군이 차량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어린이 교통안전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식이법’은 스쿨존 내 무인카메라와 신호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스쿨존 안에서 사망사고를 낸 가해자에 대해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식이법’도 처음부터 국민의 관심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강훈식 의원은 김 군의 부모와 기자회견을 하고,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내년도에 어린이보호구역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예산은 하나도 없다. 여야가 치고받고 싸우면 뭐하나. 아이들 안전은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며 관련 예산 증액을 강력히 촉구했다. 그럼에도 관련 예산의 증액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다 지난 17일 민식이 부모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이틀 뒤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이 첫 질문자로 민식이 어머니를 지목하면서 다시금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됐다. 발의한 지 한 달여만인 지난 21일 ‘민식이법’은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이어 25일 ‘하준이법’이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오는 28일엔 행안위 법안소위에서 ‘한음이법’ 등 나머지 법안도 처리될 전망이다. 여야가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면서 29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법안들이 통과될지 주목된다.

이날 당정 협의에 참석한 이해인 양의 아버지는 기자들과 만나 “해인이가 사고를 당하고 3년 넘게 법안이 계류된 와중에도 아이들이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지속적으로 겪는 상황”이라며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정말 우리 아이들을 위한 것이니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