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치러진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을 거두자 중국 언론들이 현실을 부정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선거 결과 비보도를 택한 매체도 있었고, 친중 세력의 패배가 서구의 영향력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25일 홍콩 공영방송 RTHK에 따르면 홍콩 범민주 진영은 구의원 선거에서 전체 452석 가운데 388석을 휩쓸어 구의회의 약 86%를 차지했다. 친중파 진영은 60석(13.3%)에 그쳤고 중도파는 4석을 차지했다.
중국 관영 신화사(新華社)는 범민주 진영이 18개구 가운데 17곳에서 승리한 선거 결과를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홍콩 선거관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18개구에서 452개 의석이 선출됐다”고만 보도했다. 또 “지난 5개월 동안 폭력적인 시위대가 외국의 세력과 동조해 홍콩을 엉망으로 만들기를 바랐으며 끊이지 않는 사회적 불안이 선거 절차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일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선거날 친중파 후보를 공격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폭력을 저지하고 난동을 제압해 질서를 회복하는 게 홍콩이 당면한 긴박한 임무”라며 홍콩 시위 저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중국 SNS 웨이보에 올린 논평에서 선거는 “블랙 테러의 그늘” 아래에서 진행됐다며 홍콩 경찰이 평화적이고 안전하며 질서 있는 선거가 이뤄질 수 있게 최선을 다했다고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중국과 홍콩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홍콩의 장기적이고 전반적인 이득에 초점을 둬야 하며,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비바람에도 홍콩은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홍콩 유권자가 폭력 시위를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대다수 홍콩인은 이미 폭력에 신물이 났으며 질서를 되찾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선거의 결과를 오독해 폭도들을 고무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서방 세력의 개입을 친중파 패배 요인으로 지목한 보도도 있었다. 중국 스파이가 홍콩 대학들에 침투해 공작 활동을 했다는 호주 언론의 보도,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직원이 3개월 전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구금됐을 때 고문당했다는 BBC 보도 등이 모두 홍콩의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미국 의회가 이번 선거를 겨냥해 홍콩 인권 민주주의법안(홍콩인권법안)을 서둘러 통과시켰다는 주장도 펼쳤다.
중국 언론들은 친중파가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도 약 40%의 득표율을 올렸다면서 이들과 그 지지자들에게는 낙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환구시보는 “중국의 발전과 진보는 막을 수 없다”면서 “중국은 홍콩을 영원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홍콩의 모든 선거는 중국 아래의 한 특별행정구에서 열리는 것으로 일국양제의 기본 틀을 타격할 수는 없다”며 파장을 축소하려 애썼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