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日서 “군비경쟁은 테러”… 정작 日은 무기수출 열올려

입력 2019-11-24 15:04
24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나가사키에서 반핵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교도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 원자폭탄 피해지역을 방문해 핵무기 개발과 군비경쟁 확대를 ‘테러행위’에 빗대며 각국 정치 지도자들을 향해 핵무기 폐기를 촉구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은 핵무기 피해자라면서도 핵무기금지조약에는 가입하지 않고, 오히려 매년 방위비를 늘리며 무기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어 주변국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4일 일본 나가사키시 피폭지를 방문해 “이 장소는 우리 인간이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슬픔과 두려움으로 의식하게 한다”며 “핵무기가 인도적으로나 환경의 측면에서나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온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그는 핵무기 보유를 부추기는 군비 확장 경쟁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군비 확장 경쟁은 귀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라며 “그것들은 사람들의 전인적 발전과 자연환경 보전에 쓰여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의 아이와 그 가족은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강요받고 있음에도 무기 제조·개량·유지·장사 등으로 한층 더 파괴력이 커지고 있다”며 “이것들은 엄청난 테러행위다”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교황은 유엔의 핵무기금지조약(TPNW) 비준을 촉구했다. TPNW는 핵무기의 개발·실험·생산·제조·비축·위협 등 모든 핵무기 관련 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한다. 교도통신은 TPNW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 일본의 참가를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미국의 눈치를 보며 TPNW에 찬성하지 않고 있다.

교황은 최근 다자주의 쇠퇴와 보호주의 강화에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우리는 다자주의의 쇠퇴를 목격하고 있다”며 “그것은 무기 기술 혁신과 관련해 더더욱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이 각종 협정 및 협약으로 연결되지 않을 경우, 힘을 통한 문제 해결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그러면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해서는 세계 각국이 분열이 아닌 상호신뢰를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세계는 감당할 수 없는 분열 속에 있다”며 “상호 불신이 커지면 무기 사용을 제한하는 국제적인 틀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 정치 지도자들을 향해서도 “핵무기는 국제적·국내적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님을 그렇게 명심해야 한다”며 “인도적·환경적 관점에서 핵무기 사용이 가져올 괴멸적인 파괴를 생각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아울러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이상’을 위해서는 “개인, 종교단체, 시민사회, 핵무기 보유국이나 비보유국, 군대, 민간, 국제기구가 나서야 한다”고도 호소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은 교황 메시지와는 반대로 매년 무기수출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일본 정부는 2014년 47년 만에 ‘무기수출 3원칙’을 개정해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무기를 수출할 수 있도록 하면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우려를 샀다. 또 아베 정권은 계속해서 전쟁을 금지한 ‘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지난 18~20일에는 대규모 무기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전시회는 1999년부터 영국 런던에서 2년에 한 번씩 열려온 행사지만, 일본의 방위예산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2년에 한 번씩 일본에서도 열릴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날 일본에 도착해 26일까지 일본에 머물면서 핵폐기를 호소하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할 예정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4년 바티칸 방문 당시 일본 방문을 요청했고, 지난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각 시장들도 방일 요청 친서를 보내면서 교황의 방문이 이뤄졌다. 교황의 일본 방문을 38년 만으로,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한 바 있다.

교황은 25일에는 동일본 대지진의 이재민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난민 등을 만난다. 아사히는 로마교황청은 은 ‘지진’과 ‘쓰나미’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 피해를 ‘삼중의 피해’라 평가하고 있다며 교황의 후쿠시마 방문은 핵에너지 이용에 대한 경종을 울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2011년 당시 일본 동해안에서 발생한 규모 9의 지진과 지진으로 일어난 쓰나미로 1만9000여명이 죽고 15만명이 이주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