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총에 맞은 홍콩 청년 “총알로 사람은 죽여도 믿음은 못 죽여”

입력 2019-11-24 15:04 수정 2019-11-24 15:56
패트릭 차우(21)씨가 23일 홍콩 언론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AFP/연합뉴스

홍콩 경찰이 쏜 실탄에 복부를 맞은 청년이 수술 뒤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총알로 사람을 죽일 수는 있어도 믿음을 죽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 CNN 방송은 지난 11일 홍콩 사이완호 지역에서 열린 시위에서 경찰의 실탄에 맞은 패트릭 차우(21)씨와의 인터뷰를 24일 공개했다. 차우씨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차우씨가 이날 시위자를 체포하던 경찰에게 다가가다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은 SNS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됐고, 해당 영상은 온라인으로 확산됐다. 논란이 거세지자 홍콩 경찰은 차우씨가 경찰의 총을 빼앗으려 해 실탄을 발사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총을 쐈다며 비난을 이어갔고 이후 시위 규모는 더욱 커졌다.

경찰이 11일 오전(현지시간) 홍콩 시위자의 복부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AFP-Cupid News/연합뉴스

경찰이 11일(현지시간) 홍콩 사이완호 지역에서 열린 시위에서 시위 참가자를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 Cupid Producer(丘品創作) 제공/국민일보

차우씨는 CNN 인터뷰에서 경찰이 자신을 향해 발포할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은 앞서 총을 꺼내 체포 중인 시위대원을 겨눴다”며 “나는 ‘왜 그를 조준하느냐,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경찰 해명과 달리 자신은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항변이다.

차우씨는 사건 직후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오른쪽 신장과 간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2주 정도 지났지만 똑바로 서지 못하고 걸을 때 다리를 저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정신적으로도 고통받고 있다. 그는 사건 이후 총에 맞는 악몽을 꾸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을 쏜 경찰을 용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는 내 신장을 가져갔다”고 답했다.

경찰 공격 뒤에도 차우씨의 믿음은 굳건했다. “수술 후 깨어났을 때 시위가 어떻게 됐는지 가장 궁금했다”는 그는 “시위가 더욱 격화한 것을 보고 ‘홍콩 시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더욱 용감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총알로 사람은 죽일 수 있지만 믿음은 죽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주의는 기본 인권’이라는 소신도 밝혔다. ‘민주주의에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민주주의와 자유는 기본적인 것이다. 목숨을 바쳐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홍콩 정부는 이를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홍콩의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은 투표권을 보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위해 목숨을 걸 이유가 없다. 정부는 우리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4일 홍콩에서 구의원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시위대는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총 5가지 사항을 요구하고 있다.

차우씨는 “홍콩 정부가 우리의 5대 사항을 수용한다면, 아니 최소 (경찰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 조사만이라도 수용한다면 홍콩에서의 혐오와 분노는 잦아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24일 홍콩에서는 구의원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투표는 오후 10시30분(현지시간)까지 진행되며 선거구별 당선자는 25일 오전부터 나온다. 차우씨는 “시위대가 (구의원) 선거 참여로 민주주의의 권리를 행사했으면 한다”며 “청년들이 나와서 이 정부와 마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욱 억압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내일은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