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정치’ 개시 오바마의 큰 그림…민주당을 중도정당으로

입력 2019-11-21 18:13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시카고 오바마 재단이 주최한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퇴임 후 현실정치와 거리를 유지해온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긴 잠행을 마치고 원로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을 본격화하고 있다. 좌편향 되고 있는 민주당으로는 내년 미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지난 3년간 분열적인 민주당 내부 다툼에 개입하지 않았던 오바마 전 대통령이 최근 정치적 방관자에서 벗어나 자신이 맡아야 할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그 역할은 오바마 이후 당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는 민주당에 방향을 제시하는 원로 정치인이다.

측근들은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한때 자신이 통합했던 다양한 배경의 유권자들이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이 내놓는 전국민 의료보험 정책, 전체 이민자 수 확대 등의 정책 탓에 분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도 성향 유권자들을 민주당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급진적 공약으로는 내년 대선에서 공화당을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당초 계획은 최종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민주당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끝나기 전까지는 질문을 받았을 때나 조언하고, 새 회고록 완성에 집중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 프라이머리가 점차 좌파 선명성 경쟁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이자 본격적으로 이를 경고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16일 워싱천에서 열린 민주당 기부자 행사에서 내놓은 메시지가 대표적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당시 “일부 후보들이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얘기를 하고 있다”며 “보통의 미국인들은 나라의 개선을 원하지만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민주당원은 합리적인 주장을 보고 싶어 하지 미친 주장을 원하는 게 아니다. 여전히 우리 쪽으로 설득할 수 있는 유권자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특정 후보를 거명하진 않았지만 다수 언론들은 좌편향 성향을 보이는 엘리자베스 워런과 버니 샌더스 후보를 우회 비판한 발언이라고 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주 전에도 시카고에서 열린 오바마 재단 주최 대담 자리에서도 비슷한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행사에 참여한 젊은 민주당원들에게 ‘깨어나라 문화’(woke culture)에 경도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깨어나라 문화는 인종적·사회적 불평등과 부당함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시작됐다. ‘꼰대’라는 비판을 들으면서까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 같은 주장을 펼친 이유는 지나친 깨어나라 문화가 중도파나 공화당과의 화합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NYT는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이 대선을 치르던 당시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주에서까지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든 온건한 포용 정치를 브랜드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