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찰 200명 ‘폭동죄’ 무더기 기소 초강수에도 시위대 “자수 안해”

입력 2019-11-20 18:04
홍콩 경찰이 19일 홍콩 이공대 캠퍼스 안에 남아 있다 밖으로 탈출하려던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콩 경찰이 시위대 200여명을 폭동죄로 기소하는 ‘초강수’를 두며 시위대 해산에 더욱 압박을 가했지만 홍콩 이공대 내에 남은 100여명의 시위대는 절대 자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강경파’로 알려진 크리스 탕 신임 경무처장이 취임한 후 더욱 강한 조치가 나온 가운데 시위대를 지지하는 움직임에도 강경 대응이 이어졌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밤부터 경찰이 이공대 내 시위대에 대해 전면 봉쇄와 진압 작전을 펼치자 18일 밤 몽콕, 야우마테이, 침사추이 등 이공대 인근에서는 시위대를 지지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피트 도로를 중심으로 벌어진 시위에서 이들은 최루탄, 고무탄 등을 쏘며 진압하는 경찰에 맞서 화염병, 돌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체포된 시위대는 213명에 달한다.

홍콩 시민들이 19일 홍콩 이공대 인근 침사추이 지역의 솔즈베리 가든에 모여 휴대전화 불빛을 밝힌 채 이공대 안에 남아 있는 시위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경찰 소식통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18일 밤 체포된 모든 시위대에 대해 석방을 허용하지 않고, 모두 폭동 혐의로 기소할 것”이라며 “한 번에 기소되는 가장 많은 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에서 폭동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고 1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그간 홍콩 내 단일 시위에서 가장 많은 폭동 혐의가 적용됐을 때는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지난 6월 초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후 폭동 혐의가 가장 많이 적용된 것은 지난 9월 29일 도심 시위 때로, 시위대 96명에게 폭동 혐의가 적용됐었다. 이번에 200여명에게 폭동 혐의가 적용된다면 당시의 2배를 넘는 것으로 ‘초강수’라고 볼 수 있다.

홍콩 이공대 캠퍼스에서 19일 시위자들이 병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까지 18·19일 이공대와 그 인근에서 경찰에 체포된 시위대의 수는 1100여명에 달한다. 전날 밤까지 800여명의 시위대가 이공대 밖으로 나와 경찰에 투항했는데, 경찰은 18세 미만 미성년자를 제외한 500여명을 폭동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 역시 폭동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높아 폭동 혐의로 기소되는 시위대의 수는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공대에 남은 60명에서 100여명의 시위대는 항복하거나 체포된 1000여명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이들 중 한 사람인 에릭(18)은 SCMP에 “우리는 자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그저 숨거나 우리 스스로를 방안에 가둘 것”이라며 굳은 저항 의지를 밝혔다.

홍콩 이공대 캠퍼스 안에서 시위대가 잠을 자고 쉬는 등 머물고 있는 장소. SCMP 캡처

다만 이공대 내 시위대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전날 밤 40여명의 응급 구조요원이 마지막으로 떠나면서 교내에는 부상자를 치료할 사람이 없어졌다. 뿐만 아니라 이공대 건물 옆 육교에서 몸에 밧줄을 묶고 내려오거나 하수도를 통해 캠퍼스 밖으로 나가려는 등의 탈출을 감행했지만 대부분이 성공하지 못하고 경찰에 체포됐다.

그러나 경찰이 시위대의 숨통을 점차 조여오면서 오히려 홍콩 시민들은 더욱 하나로 뭉치는 모양새다. 지난 11일부터 이어져온 점심 시위 ‘런치 위드 유(lunch with you·함께 점심 먹어요) 시위’는 이날도 어김없이 진행됐다.
시위대가 '점심 시위'를 위해 센트럴 랜드마크빌딩 앞으로 모여든 모습. SCMP 캡처

센트럴 랜드마크빌딩 앞에 모여든 200여명의 직장인들은 도로로 걸어 나와 그 일대의 교통을 막았다. 이들은 원추형 교통표지판과 쓰레기통, 난간 등을 이용해 길을 가로막고 도로를 따라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홍콩에 영광을’(glory to HongKong)을 함께 부르며 “다섯가지 요구사항(송환법 완전 철회, 체포된 시위대 무조건 석방, 시위대에 대한 폭도 규정 철회,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행정장관 직선제) 중 한가지도 빠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시위에 참여한 금융업계 종사자 피터 리(Peter Lee·26)씨는 경찰에 대한 불만으로 시위에 참여해왔다고 SCMP에 밝혔다. 그는 “정부, 특히 홍콩 사람들의 요구를 대하는 캐리 람 행정장관의 태도와 청년들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에 화가 난다”며 “아마 이제는 평화적인 시위대로서의 우리도 좀 더 공격적인 행동을 취해야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직장인 피터 펑(Peter Peung·30)씨는 이공대에 있는 학생들을 지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점심 시위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공대에서 있었던 일을 생중계로 봤을 때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다”고 이유를 설명하며 “경찰이 사람들의 머리를 때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홍콩 경찰이 센트럴 지역에서 진행된 '점심 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집회는 불법'이라는 내용이 적힌 파란 깃발을 들고 경고하고 있다. SCMP 캡처

한편 홍콩 경찰은 전날부터 점심 시위에 병력을 투입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개입하지 않았으나 전날은 현장 지휘관이 시위대를 향해 “당신의 유망한 장래를 잃고 싶지 않다면 불법 집회에 참여하지 말고 떠나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이날도 홍콩 경찰은 ‘센트럴 지역에서의 집회는 불법’이라는 내용의 파란 깃발을 들고 나와 경고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