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정부, 백악관 비우며 “트럼프 실패할 것” 악담?

입력 2019-11-20 15:34 수정 2019-11-20 22:14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바라보는 스테파니 그리샴 백악관 대변인

스테파니 그리샴 백악관 대변인이 증거도 없이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직원들이 백악관을 떠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실패할 것이라는 악담을 남겼다고 주장해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그리샴 대변인은 19일(현지시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 직원들이 백악관을 비우기 전 공보실 문 앞에 “당신들은 실패할 거야”라는 문구가 적힌 메모를 붙여놨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문구가 매우 커다란 글씨로 적혀 있었다”며 “슬프고 한심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보좌진이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 모든 사무실 곳곳에 오바마 대통령의 책이 꽂혀있었고, “당신들은 무엇도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악담이 적힌 메모도 발견됐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전임 행정부의 공개적 폄훼에 시달렸다는 취지였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에서 일했던 관료들은 즉각 반발했다.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트위터를 통해 “또 다른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공격했고, 브랜디 호핀 전 대변인도 “지난 2017년 1월 19일 우리가 백악관을 떠나던 날 공보실에 남긴 메모들은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격려의 메시지 뿐이었다”고 말했다. 연설문 담당 보좌관이었던 코디 키넌은 자신이 백악관에 아이폰 충전기를 놔두고 오긴 했다며 “하지만 그 누구도 상상력이 부족한 6학년 수준의 메모를 남기지는 않았다”고 비꼬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그리샴 대변인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어떠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한 지 34개월이 지났지만 백악관 관료 중 그 누구도 유사한 의혹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부임 첫날 백악관에 있었던 전직 고위 관료 5명은 WP에 그리샴 대변인이 묘사한 메모의 존재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거짓말 논란이 확산되자 그리샴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다들 왜 이리 예민하게 구는지 모르겠다”며 “당시 우리는 그 메모들을 매번 행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발생하는 일종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WP는 이와 관련 “그리샴 대변인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훨씬 더 부정적인 어조로 전임 행정부를 비난하며 자신은 백악관을 떠날 때 ‘전적으로 행운을 빈다’는 쪽지를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그가 단순히 농담으로 재밌는 일화를 꺼낸 게 아니라, 다분히 정무적인 의도를 가지고 ‘오바마 행정부가 앙심을 품고 새 대통령을 흔들려 했다’는 주장을 퍼뜨리기 위해 거짓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샴 대변인은 성명에서 자신의 최초 발언도 은근슬쩍 수정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책들이 공보실 캐비넷 안에 있었고 문제의 메모도 그 안에 붙어있었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