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판 아이돌’ 씨름선수의 하루를 만났다 [잡다한 하루]

입력 2019-11-20 09:55 수정 2019-11-21 09:29
‘잡(job)다(多)한 하루’는 특정 직업별로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밀착 취재해 전해드립니다. 자세한 영상은 유튜브 채널 ‘잡다한 하루’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때 국민 스포츠였지만 침체기에 빠져 있던 씨름이 최근 젊은 선수들 위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보통은 초등학생 때 씨름을 시작해서 10년 넘게 훈련한 뒤 직업인으로서 씨름 선수가 된다고 한다. 현재 국내 남·여 씨름선수단은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소속 실업팀으로 운영된다. 씨름 선수들은 통상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천 연수구청 씨름단 소속 정민궁(26) 선수를 만나봤다.

오전 8시30분 : 기상시간
“안녕하세요 연수구청 소속 씨름선수 정민궁입니다”
정 선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씨름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전학을 갔는데 우연히 씨름부에 들어갔다가 지금까지 씨름을 하게 됐다. 이후 10년이 넘도록 비슷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알람이 울리면 아침식사를 하는데 주로 몸에 좋은 여러 가지 영양제 위주로 챙겨먹는다.
많은 운동 선수들은 대부분 운동을 시작하는 어린 나이부터 단체 생활을 하며 규칙적인 일과를 보낸다. 정 선수는 어렸을 때 전학 갔던 초등학교에서 씨름부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씨름을 시작하게 됐다.


Q. 뭘 엄청 많이 드시네요.
“비타민씨, 양배추환, 양배추즙,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 견과류, 바나나, 사과, 단백질쉐이크… 보통 이렇게 챙겨먹어요.”

국내 씨름대회는 1년에 한두달 간격으로 14회 정도 개최된다. 씨름선수들은 시즌 중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연말에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열리고 이듬해 설날 장사대회가 열리는데 그 사이 1~2달 정도가 가장 길게 쉴 수 있는 비시즌기간이다. 씨름선수들은 이 기간 동안 다음 한 해를 준비하는 집중훈련을 한다.
정 선수는 씨름 체급 중에서 가장 낮은 태백급(80kg 이하)이다. 정 선수는 슬림한 체형인데, 보통 씨름선수는 뚱뚱할 거라는 인식이 많아 자신을 씨름 선수라고 소개하면 안 믿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오전 10시 : 오전 운동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전 10시부터 선수단이 다 함께 운동을 한다. 보통 근육을 만드는 웨이트 트레이닝 위주다. 이날 정민궁 선수는 동료들과 덤벨을 몇 kg까지 드는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Q. 씨름선수로서 마주한 편견이 있다면?
“어렸을 때 어른들께서 ‘무슨 운동하냐’고 물어보셔서 ‘씨름한다’고 말씀드리면 ‘씨름은 비인기종목이고 다 죽었는데 뭐하러 씨름하냐, 차라리 올림픽 종목인 유도나 레슬링을 하지’라고 가끔 말씀하셨어요. 그때 기분이 좀 안 좋았었어요. 축구·야구·농구 같은 구기종목들 다음으로 수입도 좋은 편이고, 못지 않게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Q. (들고 있는 덤벨 무게) 몇 kg예요?
“지금은 120kg요.”

Q. (놀람)
“여기에서 (덤벨을) 더 끼워서 해야 돼요.”

씨름 선수들은 크고 작은 부상이 많다. 정 선수는 “관절이 있는 부위라면 다 한 번씩은 부상을 입는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정 선수는 대학 졸업 후 실업팀에 들어왔을 무렵부터 3년 가까이 목 디스크를 앓고 있다. 지금은 많이 호전된 상태다.

Q. 씨름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운동도 힘들었고 선배들의 괴롭힘도 많이 있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많았는데, 가족들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집안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강했어요. 그 생각으로 버텨냈던 것 같아요.”

오후 2시 : 씨름 연습
점심식사를 한 후 선수들은 씨름장으로 이동해서 씨름 연습을 한다. 8강 경기부터는 TV로 생중계 되는데 선수들이 입장할 때 각자 선호하는 지정곡이 나온다.


Q. 8강 이후 경기에선 선수들마다 입장곡이 있다던데.
“제 입장곡은 ‘빠세 빠세’예요. 기합을 줄 때 ‘빠세 빠세’ 이렇게 외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골랐어요. 제목이 뭔가 와 닿았어요. 아이를 키우는 선수들은 보통 아이들이 듣는 동요 같은 노래를 입장곡으로 하시더라고요. 아이들이 보라고요.”

Q.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루하진 않은가요?
“어렸을 땐 지루했는데 지금은 직업이고 일이다 보니까 몸에 뱄어요. 지루함도 몸에 배서 지금 아무렇지 않아요. 어린 선수들 같은 경우는 그런 게 많이 보이더라고요. 저도 어린 편이긴 하지만 다른 선수들보다 더 빠르게 적응한 것 같아요.”

오후 6시30분 : 저녁식사
오후 연습을 마치면 숙소로 이동해서 저녁식사를 한다. 가사도우미 한 분이 선수들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는 등 숙소 살림을 꾸린다. 이날 식사로는 불고기, 달걀 프라이 등이 나왔다. 오랫동안 함께 살았기 때문에 가사도우미와 선수들 사이는 돈독하다. 식사 도중에 한 선수가 “이모, 이거 치우지 말라니까”라고 투정 부리자 다른 선수가 “야, 이모한테 뭐라 하지 말라니까”라며 타박했다.

Q. 숙소 식단에 싫어하는 음식이 나온 적이 있나요?
“음식해주시는 이모님이 음식을 잘해주셔서 뭐 가리는 것 없이 맛있게 잘 먹어요. 나오는 메뉴는 다 좋아해요. 싫어하는 음식은 개고기와 분홍 소세지인데, 이것들 빼고는 다 잘 먹어요.”

오후 8시 : 저녁 운동
저녁에는 각자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다. 정 선수는 숙소 뒷산을 오르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부족한 운동을 추가로 하는 편이다. 정 선수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으니 “지금 체급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다면 더 높은 체급으로 올라가서 또 거기서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 선수는 상대방의 샅바만 잡아도 이 경기에서 이길지 질지 바로 느낌이 온다고 했다. 그는 “1년 내내 훈련하고 연습해도 단 몇 초 만에 질 수 있는 게 씨름”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훈련한 만큼 성장할 수 있고 자신의 실력을 꼼수 없이 확인할 수 있는 정직한 세계이기도 하다고 했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목표는 태백장사죠. 제 체급에서 최고가 되는 게 목표예요. 운동을 하다가 힘들더라도 ‘이걸 해내고 이겨내야 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힘들어도 버티게 되는 것 같아요.”

Q. 팬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를 만큼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씨름장에 직관 오셔서 말 거시면 다 대답해드릴 수 있으니 직접 와서 꼭 인사해 주세요.”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 차인선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