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20일 재임 일수 2887일을 돌파하며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에 등극한다. 1901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2886일을 재임한 가쓰라 다로 전 총리를 밀어내고 패전 전후를 통틀어 최장기 집권에 성공하며 일본 정치사의 한 획을 긋는 것이다. 하지만 견제 없는 아베 총리의 일방 독주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핵심 이유는 단연 경제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06년 52세의 나이로 전후 최연소 총리 자리에 올랐지만 측근들로 구성된 내각이 각종 스캔들에 휩쓸리며 1년 만에 무너졌다. 절치부심한 아베 총리는 2012년 재집권 후 ‘세 개의 화살’(대담한 양적 완화, 기동적 재정 지출, 거시적 구조개혁)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를 임기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였고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국가가 계속 돈을 찍어내 무제한으로 국채와 민간 채권을 구입하며 시중에 돈을 풀자 엔화 가치는 하락했고 기업의 수출경쟁력은 올라갔다. 기업실적이 개선되면서 집권 이듬해인 2013년 경제성장률과 주가가 반등했다. 수출기업들의 호황은 고스란히 국내총생산(GDP)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 10월 기준 일본의 GDP는 2012년 대비 8.6% 늘어났다. 2012년 4.3%였던 실업률은 지난해 완전고용에 가까운 2.4%까지 떨어졌다. 올해 대학생 취업률은 98%에 육박했다.
높은 청년 고용률은 아베 내각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내각이 18~29세까지 지지층을 넓히면서 최근 20년간 가장 안정적인 지지 기반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집권 자민당 내에서는 당규를 개정해 아베 총리의 4선 연임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본은 집권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데 자민당은 이미 지난 2017년 당규를 개정해 총재 규정을 ‘2연임·6년’에서 ‘3연임·9년’으로 바꿨다. 자민당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비롯한 당 중진들이 적극적으로 아베의 4선 연임을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이상 집권도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항마가 존재하지 않아 ‘아베 1강(强)’ 현상을 견제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미쿠리야 다카시 도쿄대 명예교수는 19일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의 최장수 총리 등극 이유에 대해 “그의 능력이 뛰어나기보다는 대신할 사람이 없는 것이 비결”이라고 꼬집었다.
아베 총리와 측근 인사들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지적도 늘어나고 있다. 총리 본인은 총리 주최 ‘벚꽃을 보는 모임’에 지역구 지지자들과 후원회 관계자를 매년 초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정부 차원의 행사를 사유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스가와라 잇슈 경제산업상과 가와이 가쓰유키 법무상은 자신 혹은 배우자의 비위로 개각 두달을 채우지도 못한 채 잇따라 낙마했다. 자민당 간사장을 지낸 고가 마고토(79)는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 총리를 견제할 정치 세력이 사라지면서 아베 내각의 정치적 독선과 악수(惡手)를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베노믹스가 장기집권기간을 거치며 추진력을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엔화 약세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통화·재정정책의 실탄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정부의 부채는 지난해 1100조엔을 기록해 국내총생산 대비 2배에 달할 정도로 급증했다.
요미우리신문이 15~1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49%로 지난달 조사에 비해 6%포인트 떨어졌다. 50% 이하 지지율은 지난 2월 이후 처음이다.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좋아졌다고 실감한다는 응답도 22%에 그쳤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