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있을 주요그룹 연말 사장단 인사는 대대적인 변화보다 안정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총수들이 최근 들어 전례 없는 위기와 그에 따른 변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극에 달한 대내외 불확실성도 무시할 수 없어서다. ‘변화를 위한 변화’ 보다는 검증된 인물을 통해 안정 속에 목표를 추진하는 게 낫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그룹 총수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최근 발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인공지능(AI) 석학들과 만난 자리에서 ”생각의 한계를 허물고 미래를 선점하자”고 말했다. AI 등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은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최태원 SK 회장은 “지정학적 위기가 이렇게 사업을 뒤흔드는 걸 본 적이 없다”면서 “기존 사업에 투입하는 자원을 3년 이내에 다 없앨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위기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구광모 LG 회장도 지난 9월 첫 번째 사장단 회의에서 “앞으로 다가올 위기는 지금과는 다른 양상이다”면서 “제대로, 빠르게 실행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변화해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다.
하지만 연말 사장단 인사는 세대교체보단 안정에 방점을 찍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수년째 대규모 사장단 인사를 하지 못한 삼성전자와 주요 계열사의 경우 올해도 소폭의 사장단 인사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판을 흔드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기남 부회장, 김현석 사장, 고동진 사장 등 3개 사업 부문 대표이사 임기도 2021년 3월까지여서 인위적인 세대교체에 나설 가능성은 적다.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중에선 만 60세가 되는 이윤태 삼성전기 사장, 홍원표 삼성SDS 사장 등의 교체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삼성은 만 60세가 되면 CEO에서 퇴진하는 ‘60세룰’이 관례처럼 있었다. CEO 교체는 소폭으로 하더라도 임원 인사는 중폭 이상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너무 오래 인사가 적체되면 조직 긴장도가 떨어지고 동기부여도 안 된다”면서 “실적이 좋은 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임원 인사는 활발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SK의 경우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장동현 ㈜SK 사장 등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다. 세 사람 모두 내년 3월로 3년의 임기를 마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세 사람 모두 유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무엇보다 최 회장이 이들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사장은 SK텔레콤 중간지주회사 전환, 김 사장은 LG화학과 배터리 소송전, 장 사장은 투자형 지주회사 및 바이오사업 확대 등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한 번 더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 단 최 회장이 ‘사회적 가치’를 인사에도 적용키로 한 첫 번째 인사라는 점에서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구 회장 임기 2년 차인 LG도 변화보단 안정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전망이다. LG 인사의 핵심은 권영수 부회장의 거취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3월로 임기가 끝나는 권 부회장이 한 번 더 구 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임기가 2021년 3월까지인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등은 유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