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무관중… 벤투호, 북한 이어 레바논 ‘적막의 항해’

입력 2019-11-14 20:19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크리켓 스타디움에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또 무관중 경기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북한 평양에 이어 레바논 베이루트에서도 무관중 경기를 갖는다. 레바논에서 갈수록 심화되는 반정부 시위의 여파를 맞았다. 한국은 원정 국가의 정치적 상황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대륙 예선 두 경기를 연속으로 텅 빈 관중석에 둘러싸여 치르게 됐다.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사례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14일 “한국과 레바논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4차전에 관중을 유치하지 않기로 레바논축구협회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경기는 밤 10시(한국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카밀샤문 스타디움에서 시작된다. 한국은 레바논 원정을 사실상 중립지역 경기에 가까운 환경에서 치르게 됐다. 레바논 안방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은 변수에서 사라졌다. 오히려 그라운드를 휘감을 정적이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이 경기장의 수용 인원은 4만8000여명이다.

한국은 이미 지난달 15일 평양에서 북한과 득점 없이 비긴 H조 3차전 원정경기에서 무관중을 경험했다. 당시 북한축구협회는 대한축구협회에 이유를 알리지 않고 5만 관중석을 비웠다. 한국의 관중·취재진·중계진의 방문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평양 원정은 인터넷망 하나로 기록만 전해지는 ‘깜깜이’ 경기가 됐다. 베이루트 원정은 관중만 없을 뿐 중계방송은 예정대로 이뤄진다.

대한축구협회는 이 경기를 앞둔 지난 1일 심상치 않게 전개되는 레바논 반정부 시위를 우려해 이번 경기에 대한 중립지역 개최를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요청했다. AFC는 FIFA, 레바논축구협회와 협의해 ‘안전 보장’을 전제로 경기 개최지를 변경하지 않았다.

레바논에서 지난달 17일 조세 정책을 비판하며 촉발된 시위는 정부에 저항하는 전국적인 목소리로 확산됐다. 지난 13일 군의 발포로 사망자가 나오면서 시위는 격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레바논축구협회는 AFC에 무관중 경기를 제안했고, 대한축구협회는 이날 경기를 앞두고 동의했다. ‘깜깜이 평양 원정’으로부터 꼬박 한 달 반에 벌어진 일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