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이슬람교 시아파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가 대규모 유혈 사태로 번진 이라크 시위와 관련해 11일(현지시간) 유엔이 제시한 해결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89세의 고령이나 이라크 시민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알시스타니가 직접 혼란 수습에 나선 만큼 이라크 시위가 새로운 분기점을 맞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몰린다.
알시스타니는 이날 이라크 남부 나지프에서 제닌 헤니스 플라스하르트 유엔 이라크 특사와 회담을 한 뒤 “유엔의 제안을 지지하며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다만 그는 “이라크 정당들이 어떠한 개혁의지도 발휘하지 않고 그들에게는 진정성도 결여돼있다”며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엔 이라크지원단은 전날 이라크 시위 해결을 위한 장단기 대책을 권고했다. 권고안에 따르면 이라크 정부는 2주 안에 선거제 개혁 부패 방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서 시위 중 체포된 시민들을 즉각 풀어주고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한 이들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시위의 주 원인이 이란의 내정 간섭과 이란에 결탁한 이라크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인 만큼 주변국들이 이라크 국내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제사회가 먼저 이라크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유엔이 이라크 정부에 구체적인 행동 지침까지 제안하고 나선 까닭은 이라크 군·경찰의 시위 진압이 학살에 가까운 인권유린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라크 의회 산하 인권위원회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지난달 1일부터 지금까지 총 319명이 숨졌고 1만500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아델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가 최근 “정치권의 실책을 통감한다”며 조기총선과 선거제 개혁을 약속했지만 거리의 시위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공식 사망자수 집계는 여전히 통제되고 있으며, 부상을 입은 시위자들은 체포가 두려워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현지 의료진들은 “부상을 입은 어린 시위자들은 병원에 갔다가 정부의 감시를 받게 되거나 체포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탓에 병원에 가는 일조차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