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롄커(61)는 중국의 문제적 작가다. 그는 ‘허삼관 매혈기’ 같은 작품으로 한국에도 유명한 위화,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옌과 함께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통한다. 옌롄커의 작품 중엔 자국에서 금서(禁書)로 지정된 책이 수두룩한데, 이유는 그의 소설이 중국 기득권층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중국 사회의 그늘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최근 홍콩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시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옌롄커는 12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선 내가 처한 입장이 있으니 (대답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홍콩 시위에 대해서는 희미하게나마 자신의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전날 벌어진 시위에서 참가자가 실탄에 맞아 쓰러진 사실을 언급했다. 옌롄커는 “인간의 자유를 위한 모든 노력은 소중하다. 나는 폭력에 반대한다. 목숨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문학계에서 옌롄커가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하다. 매년 가을 ‘노벨문학상 시즌’이 돌아올 때면 해외 많은 매체에선 그를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한다. 하지만 간담회에서 그는 자신을 “실패자”라고 거듭 규정했다. “삶에서, 글쓰기에서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나는 많은 이상을 품고 살았는데, 그중에서 80%는 이루지 못했다. 나는 참 심심한 삶을 살고 있다. 위대한 작품도 쓰지 못했다. 진정한 독창성을 보여주는 글을 쓴 적이 없다. 작가로서 가장 가치 있는 삶은 모든 창의력을 동원해 개성 있는 단 하나의 작품을 써내는 것이다.”
과거 옌롄커는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작가 가운데 김애란의 소설을 치켜세운 적이 있다. 간담회에서 그는 이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김애란의 단편은 뛰어나다. 중국의 비슷한 또래의 작가, 그 누구보다 힘 있는 소설을 쓴다”고 격찬했다. “섬세한 감성과 삶을 향한 사랑도 느낄 수 있다”고도 했다. 이어 “한강이나 황석영의 작품도 인상 깊게 읽었다”고 덧붙였다.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묻자 “내 작품 가운데 ‘연월일’을 빼면 특별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작가로서 ‘현재의 중국’에서 태어났다는 걸 행운으로 여긴다. 중국에선 많은 사건과 사고가 벌어진다. 스토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이런 나라에서 살다 보면 작가로서 특별한 영감이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옌롄커의 이력을 살피면 이색적인 지점이 많다. 중국 허난성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78년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28년간 직업군인으로 살았다. 군에 복무하면서 틈틈이 작품을 썼고, 89년 해방군 예술대 문학과에 진학해 뒤늦게 글쓰기에 매진했다. 옌롄커는 “입대한 뒤에야 외국 소설을 읽게 됐고, 소설이 단편 중편 장편으로 나뉜다는 것도 알았다”며 “군 생활이 없었다면 작가가 될 수 없었을 거다. 내 운명에 감사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옌롄커가 한국을 찾은 건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이 시작한 프로젝트 ‘세계 작가와의 대화’에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저녁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침묵과 한숨-내가 경험한 중국과 문학’을 주제로 강연을 연다. 13일에는 연세대와 고려대를 차례로 찾아 연단에 오른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