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정희가 10년째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그의 최근작 영화 ‘시’ 출연 당시 모습이 이목을 끌고 있다. 윤정희의 발병 시점이 이 영화에서 알츠하이머 환자 역할을 맡았던 때와 비슷한 시기라는 점에서 관심이 더욱 집중된다.
백건우의 내한 공연을 담당하는 공연기획사 빈체로에 따르면 윤정희는 최근 자녀와 동생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알츠하이머가 심각한 상황이다. 요리하는 법도 잊고, 밥 먹고 나면 다시 밥을 먹자고 하는 정도까지 악화됐다고 기획사는 전했다. 최근 병세가 악화돼 주로 딸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 씨네 옆집으로 거처를 옮겨 머물고 있다. 윤정희의 남편 백건우와 딸 진희씨는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다.
때문에 윤정희의 전작인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10년 개봉한 이 작품에서 윤정희는 치매로 기억이 망가져 가는 주인공 미자 역을 맡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5년 만에 영화계에 복귀한 그는 그해 칸 영화제에 초청됐고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받았다.
윤정희는 ‘시’ 속 인물과 현재 그의 모습이 닮아있다. 이에 대해 남편 백건우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작품인데 참 이상하지 않나. 그 역할이 알츠하이머 앓는 역할이라는 게 그게 참”이라고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윤정희는 영화 ‘시’를 촬영할 때만 해도 제작진들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초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스태프는 연예매체 OSEN에 “촬영 때는 몰랐는데 최근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같은 매체에 “최근에 윤정희 선생님의 투병 소식을 접했다. ‘시’ 당시 때는 진행 초반이었을까. 눈치챈 분들도 있었을 수 있지만, 당시 윤정희 선생님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느낀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영화 ‘시’는 이창동 감독이 배우 윤정희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극 중 윤정희가 연기한 ‘미자’도 윤정희의 본명을 딴 것으로 전해졌다. 영화에서 윤정희는 홀로 손자를 키우며 늦은 나이에 시를 배우는 할머니 미자를 연기했다. 공교롭게도 극 중 미자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한국 영화의 황금기로 불리는 1960년대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연 그는 단역 혹은 조연부터 시작한 문희나 남정임과 달리 첫 영화부터 주연을 맡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해 60년대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그는 현재까지 3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 24차례에 걸쳐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