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3시 청와대 여민2관 3층 회의실. 김혜애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과 유대영 자치발전비서관 주관으로 열린 ‘불법 폐기물 관련 청와대 상황점검회의’ 분위기는 엄숙했다고 한다. 회의에는 국무조정실과 환경부, 행정안전부에서 폐기물 문제를 담당하는 관료들과 시·군·구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회의에선 환경부 측이 불법폐기물 처리 및 집중관리계획을 설명했다. 이후 각 지자체별로 “폐기물 처리 비용이 부족하다”, “정부에서 지원을 더 해야 한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경남 창녕군의 경우 군 자체 조사결과 불법 폐기물이 1100t 늘어났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국비 7100여만원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다른 지역 환수금으로 지원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조정점검회의에서 ‘불법폐기물 관리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해당 대책에는 지난해 11월 수립된 환경부의 ‘불법폐기물 근절대책’에 따라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월까지 실시한 전수조사를 토대로 불법폐기물 처리 계획과 근본적 제도 개선 방안이 포함됐다. 정부는 전체 불법폐기물의 41.2%인 49만6000t을 올해 안에 우선적으로 치우고, 2022년까지 모든 불법폐기물을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부의 계획은 불과 두달 만에 수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당초 2022년까지 전량 처리키로 한 불법 폐기물을 시한을 앞당겨 연내에 처리를 끝내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불법 폐기물 처리 강화 및 제도개선 방안 보고를 받고 “정부 제출 추경예산에 반영된 관련 예산을 활용해 반드시 올해 내에 불법 폐기물 처리를 마무리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올해 중 불법 폐기물을 전량 처리해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며 “사법기관은 쓰레기 투기로 이득을 취한 범법자를 엄중히 처벌하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 지시 4달 후인 지난 8월 환경부는 전국의 불법폐기물 120만3000t 중 55만t(45.7%)을 처리했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쓰레기산’으로 불린 경상북도 의성군의 불법폐기물 현장도 지난 6월부터 본격적인 처리에 들어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환경부의 ‘자화자찬’은 불과 두달 만에 망신을 당했다.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2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경북 포항의 한 폐기물 위탁처리업체와 영천 폐기물 보관업체 사진을 공개했다. 신 의원은 “쓰레기산이 장소만 옮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인데도 환경부에서는 누구 하나 점검을 안 했다. 세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이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관리·감독해서 보고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잘 파악이 안 된 것 같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새로운 문제로 드러났기에 (관리·감독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답했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불법폐기물 처리 예산 집행 현황’ 자료를 근거로 “총예산 497억원 가운데 올해 8월 말 기준 집행액은 21억원에 불과하다”며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자체 공무원들의 애로사항 개선 등 예산 집행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환경부는 지난 8월 폐기물 처리가 늦어지는 이유로 지자체의 소극 행정을 들었다. 당시 환경부 측은 “일부 지자체의 소극적 대응으로 폐기물 처리 착수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소극 행정으로 처리가 부진한 지자체에는 감사원 감사 청구, 국고 지원 사업에서 페널티를 주는 등 적극적인 처리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했다.
반면 지자체들은 대통령의 올해 내 폐기물 전량 처리 지시 자체가 무리한 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방정부가 연내 폐기물 처리때문에 비상이 걸렸다”며 “처리 시한인 연말까지 한달 반 정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처리 비용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시군구 환경 담당 공무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태”라며 “연내까지는 도저히 처리가 어려운데, 중앙 차원의 패널티가 예상돼 한숨만 쉬고 있다”고 했다.
당장 경북 의성 ‘쓰레기 산’ 부터가 연내 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경북도청은 외신에 보도되며 망신을 산 의성 폐기물 17만2800t에 대해 올해 선별작업을 끝낸 뒤 재활용 가능한 7만7000t을 우선 처리하고 나머지는 내년에 추가로 국비를 확보해 소각이나 매립키로 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방정부가 폐기물 문제를 방치해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연말이라는 시한은 너무 촉박하다”며 “조사를 하면 할 수록 폐기물 양이 늘어나는데 국비만 투입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처리 기한을 좀더 늘려줬으면 한다”고 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