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1라운드 판세를 뒤흔든 건 단연 OK저축은행이다. 지난 시즌 5위로 봄 배구 진출에 실패해 다크호스로 분류됐던 이 팀은 1라운드 한 때 5연승을 내달렸다. OK저축은행의 행보엔 새로 부임한 석진욱(43) 감독의 ‘소통의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7일 경기 용인의 OK저축은행 연습체육관에서 그를 만났다.
석 감독은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냈다. 레프트 공격수임에도 도사 같은 수비력을 갖춰 ‘돌도사’로 불리며 삼성화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은퇴 후 수석코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7년 동안 신생팀 OK저축은행의 챔피언결정전 2회 우승에 기여했다.
그런 그에게도 감독직은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처음엔 권위를 내세우며 지적만 했다. 그렇게 해야 선수들이 따를 거라 생각해서다. 석 감독은 “‘왜 그것도 못하냐’, ‘열정도 없냐’며 지적만 했어요. 감독이 되면 선수들과 상하관계가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나이 들어 보이면 권위가 설까 해서 흰 머리도 염색을 안 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시즌 전 연습경기를 치르며 석 감독은 변했다. 선수들의 표정이 어두운 걸 보고 나서였다. 석 감독은 “며칠 간 집에서 반성을 했어요.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는 게 내 스타일인데 왜 옛날 방식대로 혼내기만 할까 하고요. 선수들이 아니라 저부터 바뀌어야 했죠”라고 말했다.
7월 서머매치가 지난 후 석 감독은 머리를 다시 검게 물들였다. 선수들에게 사과한 후 같이 호흡하자고 약속했다. ‘진정성 있는 소통’에 중점을 뒀다. 선수들이 마음 터놓을 수 있는 감독이 되기 위해 숙소와 훈련장에 상주하며 선수들과 시간을 보냈다.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백업 선수들과는 따로 술자리를 마련해 먼저 힘든 점을 물었다.
생활에서도 자율을 강조했다. 시합 전 날 합숙만 빼고는 외박을 자유롭게 했다. 오후 11시에 있던 총각 선수들의 점호 시간도 없앴다. 훈련도 개개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 쉬어갈 수 있게 했다. 석 감독은 “일단 코트 안에 들어서면 훈련이든 경기든 열정적으로 임하는 게 선수의 기본이죠. 자율적으로 하되 기본을 지키지 못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고 설명했다.
훈련 방식도 바꿨다. 힘들기만 한 훈련보다는 상황에 따른 플레이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반복 훈련을 할 수 있게 선수들과 소통을 통해 맞춤형 훈련을 준비했다. 그러다보니 단체 훈련 시간이 30분 줄었음에도 선수들이 오히려 훈련 뒤 남아 개인 훈련을 진행하는 문화가 조성됐다. 숙소가 편하다며 남아있는 선수가 늘어났고, 선수들 간 경기에 대한 대화도 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부진했던 송명근이 리시브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 센터 전진선과 손주형도 블로킹과 움직임이 개선됐다. OK저축은행이 쉽게 지지 않는 팀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초보감독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잘 나가던 팀은 현대캐피탈과 우리카드에 2연패 당하며 순위가 2위로 한 단계 내려가는 등 초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석 감독도 위치를 알고 있다. 아직 팀이 100점 만점에 70점이라는 생각이다. 석 감독은 “범실은 지난해보다 많이 줄였지만 아직 블로킹과 리시브가 부족해요. 완벽은 없어요. 완벽해지려 노력을 할 뿐입니다”고 말했다.
석 감독의 지도자 인생은 이제 막 첫 발을 뗐다. 긴 여정이 될 지도자 인생에서 석 감독은 ‘존경 받는 감독’을 꿈꾼다. 롤모델은 삼성화재 시절 은사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이다. 석 감독은 “빈틈이 없을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셨어요. 제자들이 존경을 담아 찾는 모습이 부러웠고 나도 나이 들어서 저렇게 됐음 좋겠다고 생각 했죠”라고 말했다.
‘아직 초보감독’이라고 말하는 석 감독의 미래가 밝아보였던 이유는 그가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배구가 아직도 재밌다보니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하는 석 감독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빛났다. 인터뷰가 끝나고 체육관을 나설 때까지, 삼삼오오 모여 자율 훈련을 하는 선수들의 큰 파이팅 소리가 체육관 밖으로 퍼져 나왔다.
용인=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