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반도체 장비업체인 네덜란드 ASML이 반도체의 성능을 높여주는 차세대 장비를 당분간 중국에 납품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는 중국과 기술전쟁을 벌이는 미국을 의식해 납품을 보류키로 했다. 따라서 중국의 차세대 이동통신 5G 전략과 반도체 굴기(崛起)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무역협상 ‘1단계 합의’를 놓고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가 길어지면서 합의문 서명식이 12월로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ASML은 중국 최대 파운드리업체인 국영 SMIC에 올해말까지 납품키로 했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납품을 보류키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7일 보도했다.
한 관계자는 "ASML은 중국에 최첨단 장비를 공급해 미국을 자극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납품을 일단 보류했다“고 전했다.
EUV노광장비는 ASML이 개발해 독점 생산하고 있다. EUV노광장비는 기존 공정기술인 불화아르곤(ArF) 광원보다 빛 파장이 짧아 웨이퍼에 더 미세하게 패턴을 새길 수 있다. 반도체의 성능 향상은 회로 선폭을 얼마나 미세하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1대 당 가격이 2000억원 가량에 이르는 EUV노광장비는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등 극소수 반도체 기업들이 도입해 첨단제품을 생산에 사용하고 있다.
SMIC는 삼성전자 등에 5년 이상 뒤처진 미세공정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지난해 6월 ASML에 EUV 노광장비 1대를 주문했으나 ASML은 미국의 오해를 사고 미래 사업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며 최종 납품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반도체 장비 부품의 약 20%를 미국 코네티컷주에 있는 자사공장에서 생산해 마이크론 등 미국 고객사에 납품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에서 미국이 차지한 비중은 16%에 달했다.
하지만 ASML은 미·중간 긴장완화 상황을 보면서 납품 재개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ASML의 매출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로 한국의 35%에 이어 2위 시장이어서 포기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ASML이 남품 보류 결정을 내림에 따라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앞으로 5G서비스가 본격화되면 스마트폰 등의 데이터처리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반도체 성능향상이 더욱 중요해지는데 첨단 기술 도입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5%에 머문 반도체 자급률을 내년에 40%, 2025년에는 70%로 높인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지만 미국의 집중 견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1단계 무역 합의 서명이 12월로 연기될 수 있다고 미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미 경제전문방송 CNBC도 미국이 1560억 달러(약 181조원) 규모의 중국 제품에 15%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기로 한 다음달 15일이 ‘데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다음달 부과될 관세 뿐이라 자국 제품에 대해 이미 시행중인 고율 관세의 철회나 완화를 요구하는 등 양츣의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중국 측이 “모든 관세를 가능한 한 빨리 철폐하기 위해 미국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국 정상의 합의문 서명 장소에 대해서도 미국이 미국 내 최대 대두 집산지인 아이오와나 알래스카 등을 서명장소로 제안했지만, 현재는 유럽 등 제3국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