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가 제주 제2공항 추진과 관련해 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의 중요한 판단을 개발기본계획 본안에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제2공항 예정 부지(서귀포시 성산읍 일원 545만7000㎡)가 여러 나라 철새의 중간 기착지라 항공기-조류 충돌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었는데, 비행 안전과 직결되는 사항을 국토부가 사실상 묵과한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안전상의 이유로 부지 부적합 판단이 제기된 제주 제2공항 문제가 새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최근 국토교통부가 환경부에 제출한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 개발기본계획(본안)에 대해 예정 부지의 입지 타당성이 매우 낮다며 반대 입장을 재차 낸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원 측은 3개월 전에도 같은 이유를 들어 국토부 초안에 대해 다른 입지 모색을 요청했으나, 국토부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본 지가 국회 이정미(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 개발기본계획(본안) 검토의견서’를 보면, 연구원은 국토부의 평가서 초안에 대해 제2공항 예정부지가 과수원 등 규제대상 시설물과 철새도래지 등이 인접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 대안 입지 검토를 요청했다. 또, 제2공항 입지 선택시 항공기-조류 충돌 위험성 평가방법으로 ‘공항 운영시 평가방법’이 아닌 ‘신규 공항 입지시 평가방법’을 적용할 것을 제안했지만, 국토부는 기준이 보다 완화된 ‘공항 운영시’에 적용되는 충돌 위험성 모델을 적용했다.
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의 연안과 습지는 시베리아와 중국, 호주, 일본 등지로 이동하는 철새들의 주요 월동지다. 특히 제2공항 예정 부지에 가까운 하도리, 종달리, 오조리는 제주도 동부권의 철새도래지 벨트로, 항공기의 조류충돌 가능성이 높다. 연구원은 공항 예정지가 철새벨트 3~5㎞내에 입지하므로 국내외 안전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항공기-조류 충돌은 단 한 차례의 충돌로도 기체의 물리적 훼손과 추락 등 인명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 때문에 국토교통부는 공항표점(중심점)으로부터 13㎞이내 지역에 조류를 유인할 수 있는 방식의 토지 이용(농작물 경작 등)을 불허하고 있다. 특히 3㎞ 이내에는 조류보호구역, 음식물쓰레기장, 과수원 등을, 8㎞이내에는 조류보호구역, 사냥금지구역 등의 신규 설치를 불허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영국 등 국외도 마찬가지다. 연구원은 조류를 유인하는 양식장이 성산읍 관내에만 많다(20곳 이상)는 점에도 우려를 제기했다.
연구원은 국토부의 조류충돌 위험성 평가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연구원은 신규공항입지에 따른 항공기-조류 충돌 위험성 평가방법을 적용할 것을 제안했는데, 국토부는 이보다 완화된 ‘공항 운영시 평가 방법’을 적용했다. 철새 이동이 많은 곳 가까이에 신규 공항을 설치하려 하면서도 안전을 고려한 꼼꼼한 조사방식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신규 공항 설치시 항공기-조류 위험성 평가’에서는 주변 조류 개체군 크기, 주변 취식 위치, 조류가 예정지를 가로지르는 도, 이상의 위험요소를 경감시킬 수 있는 기술력의 정도 등을 매우 중요하게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연구원은 현장 조사 근거를 토대로 항공기 소음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안 검토와 1차 시추조사에서 동굴 발견 가능성이 크게 나타난 구간 및 동굴 지질이 발견된 구간에 대해 추가 조사를 제언했지만 이 역시 반영되지 않았다.
공항건설은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받는다. 국토부는 지난 6월 평가서 초안을 환경에 제출했고, 환경부는 환경정책평가연구원과 국립생태원, 국립과학원 등으로부터 검토의견을 받아 지난 8월 국토부에 전달했다. 국토부는 그로부터 불과 한 달 만에 보완작업을 끝낸 평가서 본안을 환경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가 환경영향평가 검토에 전문성을 지닌 국책연구기관의 핵심적인 판단을 묵과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된다.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사회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한국환경회의는 “국토부 평가서 본안에서 환경과 관련한 상당한 문제점이 발견됐다”며 “환경부는 관련 법에 따라 제2공항 평가서에 부동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는 제주도의회 앞에서 연일 ‘환경부는 제2공항 전략환경평가서에 부동의하라’고 외치고 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30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 등에 대해 “기존 제주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을 대안 입지로 포함해 가장 적합한 부지를 선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31일 제주에서는 제주 제2공항 건설 여부를 공론화하기 위한 제주도의회 공론화 특위 구성 결의안 심사가 다음 회기로 미뤄졌다.
도의회 운영위원회는 제377회 임시회 마지막인 31일 ‘제주 제2공항 건설 갈등 해소를 위한 도민 공론화 지원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과 ‘제주도의회 공론조사 특별위원회 구성을 반대하는 청원의 건’을 일괄 상정해 의원 거수투표로 심사 보류를 결정했다.
이에 공론화 특위 구성안을 공동 발의한 김태석 의장과 박원철 민주당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의원총회를 열어, 제2차 정례회가 열리는 다음 달 15일 오전 11시까지 운영위원회가 회의 결과를 보고하도록 의사 결정 시한을 통보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운영위에서 공론화 특위 구성을 부결하더라도 의장이 본회의에 안건으로 직권 상정할 수 있게 된다.
이날 운영위가 결의안 심사 보류를 결정한 것을 놓고도 비판이 제기된다. 제주 사회에 극심한 갈등을 낳고 있는 제주 제2공항 문제에 대해 도의회가 해법으로 제시했던 특위 구성을 의회 스스로 져버리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김경학 의회운영위 위원장은 안건 논의를 위해 정회를 선포한 뒤 속개 2분 만에 공개 거수투표로 심사 보류를 결정하고 산회했다. 주요 안건을 충분한 논의 없이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방식이 대의기관으로서 적절치 못한 태도라는 지적이다.
한편 지난 5월 제주지역 언론사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62.4%가 ‘제2공항 추진절차 평가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답했고, 84.1%가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