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모든 순간들은 특별하다”

입력 2019-10-30 13:51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터 한트케. AP뉴시스

유튜브가 열풍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를 누군가 묻는다면 ‘유튜브의 시대’라고 대답하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시간을 사는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10∼20년 후 우리 사회를 짊어지고 나아갈 지금의 10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이트가 유튜브라는 조사 결과를 얼마 전 기사로 접하기도 했다. 어떤 공동체의 이데올로기가 침범하지 않은 순수 개별의 목소리로서, 다시 말해 개인이 곧 매스컴이 되는 ‘개인 언론’으로서 정치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타자’에 대항할 만한 매체로 유튜브가 존재하고 성장한다면, 지금 이 ‘유튜브의 시대’는 환영받아 마땅하다.

내가 몸담은 출판계에도 유튜브 열풍이 한창이다. 고전적 형태의 출판으로 일관하던 문학 출판사들도 이제 시대를 주도하는 새로운 매체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새로워지면서 다변화하고 있는 젊은 독자들에게 더욱 관심을 얻으려는 방안으로 본다면 일종의 ‘좋은 노력’이라고 생각된다. 여하튼, 얼마 전 열풍이 한창인 출판계 유튜브를 떠들썩하게 장식한 이슈가 있었다. 물론 그것은 그곳뿐 아니라 수많은 언론의 조명을 받은 이슈이기도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그것.

매년 가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문학으로 먹고사는 출판사들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목 빼고 기다려오긴 했지만, 올해는 유달리 특별한 기다림일 수밖에 없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미투 파문에 휘말리면서 지난해의 경우 노벨문학상이 시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올해 노벨문학상은 사상 최초로 ‘이월’된 수상자와 올해의 수상자가 함께 발표됐다. 2018년은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가, 2019년은 오스트리아의 작가 페터 한트케가 그 영예를 가져갔다.



시인이라는 애매한(수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직업을 ‘투잡’으로 가진 나로서는 올해 수상 작가의 시집에 먼저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이후 가장 먼저 읽은 책은 페터 한트케의 시집 ‘시 없는 삶’이었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번역가이자 시인인 한트케의 유일무이한 시집이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간 게 사실이다. 한트케는 1960년대 ‘관객모독’이라는 실험적 희곡을 통해 세계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한 작가다.

‘시 없는 삶’은 60년대 후반부터 86년까지 쓴 시들을 작가가 직접 다시 배치한 시선집이다. “독창적인 언어로 인간 경험의 주변부와 특수성을 탐구”한 작가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에서 ‘시 없는 삶’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보잘것없는 순간들의 연속이라고 인식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한트케의 독창적인 언어대로라면, 우리의 삶을 이루는 모든 순간은 특별하다.

첫 시 ‘새로운 경험’은 그런 특별한 순간들의 자명함을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전하는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나온 세월을 되짚으면서 작가는 처음의 순간들을 떠올린다. 작가가 돌이켜봤을 때 수많은 ‘처음의 순간’들은 그저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낸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시간들이었다.

‘1968년 1월 27일 FC 뉘른베르크 포메이션’이라는 작품은 그날 그 팀의 포메이션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놓여 있기도 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의 사건이, 체험이, 기억이 텍스트화 될 때 그것은 특별한 순간이 된다고 한스케는 우리에게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다만, ‘독창적인 언어’로 대변되는 한스케만의 문체 자체에서 감성 어린 풍광이나 정서를 찾으려 한다면 이 시집이 딱딱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세계를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한트케의 정신을 읽을 때 이 시집은 지금 우리의 가을처럼 유유히 흘러가기 시작하지 않을까.

“올해 가을 시간은 나 없이 흘러갔네/ 생은 조용히 정지하여 있고, 그 시절/ 우울을 이기려 타자를 배우던 때처럼/ 저녁이면 창문 없는 대기실에서 수업을 기다렸지/ 네온등은 물밀듯 넘쳐들었고/ 타자시간이 끝나면 비닐커버는 다시 타자기 위에 덮였네/ 그렇게 갔다가 그렇게 돌아왔고 나는/ 자신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을 듯 했지” (‘시 없는 삶’ 중에서)

<임경섭·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