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이낙연 국무총리를 통해 ‘조기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뜻이 담긴 친서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전달했지만 일본 정부는 미온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전히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은 한국 정부가 해결하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은 30일 아베 총리가 지난 24일 이 총리와의 회담에서 조기 정상회담을 권하는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받았으나 징용 피해자 배상을 명령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의 요구를 한국 측이 받아들이는지 당분간은 더 지켜보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친서를 받을 때 “일한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돌리는 계기”를 만들 것을 한국 측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 고관도 “문제는 단순하며 국제 약속을 지킬 것인지 어떤지다. 공은 한국 측에 있다”고 말해 신문은 일본 정부가 현 상황에서는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을 태세라고 봤다.
앞서 이 총리는 아베 총리와의 회담에서 자신이 “한일 관계가 개선돼서 두 정상(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이 만나면 좋지 않겠습니까”라는 발언을 했으며, 이는 시기나 장소에 대한 언급 없이 기대를 표명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문 대통령이 보낸 친서에 11월 국제회의를 계기로 한 정상회담 제안이 포함됐느냐는 질문에는 “친서를 내가 소개할 수는 없다. 실무선에서 쓴 초안 단계에서 봤을 때 숫자는 없었다”며 11월 정상회담에는 선을 그었었다.
다음 달 초순에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가 태국 방콕에서 열리고, 중순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칠레에서 열린다. 문 대통령은 이들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며 아베 총리 역시 마찬가지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일정이 예정돼있는 가운데 이를 계기로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을 진행하거나 짧은 만남을 가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밖에도 중국에서 12월 하순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이 논의 중인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3국 정상회의가 열리면 이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할지도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요미우리는 최근 한일 관계를 두고 미국이 다음 달 23일 종료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실효 전에 한일 관계 타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한일 외교 소식통의 설명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전에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힘쓰고 있으며, 조기 정상회담 제안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양국의 첨예한 입장 차이는 그 폭을 좁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징용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되 한일 양국이 지혜를 모아 적절한 해법을 찾자는 입장이지만, 일본 정부는 판결 자체가 국제법 위반이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