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한국 국적의 20대 여성이 남자친구를 1년 반 동안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 혐의로 미 검찰에 기소됐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서퍽 카운티 지방검찰은 2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서퍽카운티 대배심은 보스턴 대학에 재학 중인 유모(21)씨를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유씨의 심리적 압박이 연인이었던 A씨(22)의 극단적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유씨는 필리핀계 미국인으로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던 A씨와 18개월 간 교제했고, 그 기간동안 남자친구를 신체적, 언어적, 심리적으로 학대했다. A씨는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완전히 유씨의 통제 아래 있었고 친구들이나 가족들로부터 철저히 고립됐다.
특히 A씨는 지난 5월 숨지기 전 두 달 간 유씨로부터 4만7000통이 넘는 문자 폭탄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문자 메시지의 대부분은 “죽어버려라” “너가 사라지는 게 나와 너의 가족, 그리고 세상에 더 좋다” 등 자살을 종용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A씨는 지난 5월 20일 보스턴의 한 주차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학 졸업식을 몇시간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심지어 유씨는 A씨가 숨진 당일 오전까지도 휴대전화 위치추적 시스템으로 A씨의 행적을 감시했으며, 그가 주차장서 극단적 선택을 할 때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며칠간 유씨의 학대는 더 잦아졌고 심해졌으며 모욕적이기까지 했다”며 “유씨는 자신의 학대 때문에 남자친구가 자살 충동과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부추겼다”고 말했다.
내년 5월 졸업 예정이었던 유씨는 사건 발생 3개월 뒤인 지난 8월 학교를 자퇴했고, 현재는 한국에 귀국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스턴 검찰은 “유씨가 미국에 자발적으로 돌아오도록 유씨측 변호인단과 협의 중”이라며 “유씨가 거부할 경우 한국 사법당국에 강제 송환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2014년 발생한 ‘미셸 카터 사건’과 이번 사건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17세였던 카터는 남자친구인 콘래드 로이에게 구체적인 자살 방법을 제시하고,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까지도 전화 통화로 이를 부추겼다. 검찰은 평소 주변인들의 관심을 갈구했던 카터가 ‘비련의 여자친구’ 행세를 하기 위해 로이를 이용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매사추세츠주 브리스톨 카운티 청소년 법원은 지난 2017년 과실치사 혐의로 카터에게 징역 15개월 형을 선고했다.
매사추세츠 주의회는 카터 사건을 계기로 자살을 부추겨 타인을 숨지게 할 경우 최대 5년형의 처벌을 받는 ‘콘래드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