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원세훈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한 말

입력 2019-10-29 07:19
뇌물과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그는 이날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향해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이순형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약 3시간 동안 비공개로 신문에 응했다.

비공개 신문에서는 2011년의 10만 달러와 관련해 ‘대북 공작’의 목적에 부합하게 사용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 신문이 끝난 뒤 이 전 대통령은 오후 5시 15분께부터 약 1시간 동안 공개 법정에서 증언했다.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은 2010∼2011년 국정원 특활비 3억여 원이 청와대로 전달되는 과정에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2010년 원 전 원장이 김백준 전 기획관을 통해 2억원을, 2011년 김희중 전 제1부속실장을 통해 1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억500만원을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날 증인으로 법정에 선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2억원을 받았다는 김 전 기획관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원 전 원장에게 특활비를 요구한 적도 없고 김 전 기획관에게 특활비를 상납받았다는 사실을 보고받지도 못했다고 부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인간적으로 왜 그렇게 됐을까 하는 안타까운 심정 겸, 어떤 사정이 있길래 그럴까(하는 마음이다)”라며 “그래도 (왜) 아닌 것을 있는 것처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원 전 원장의 변호인은 김 전 기획관이 2달여 동안 58차례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거론하자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을 에둘러 비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이 기소된 혐의에 대해서는 한두 번 조사받으면 끝이었을 텐데 안타깝다”며 “검찰도 앞으로는 안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기획관이 자신에게 굳이 불리한 진술을 할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할 말은 많지만 안 하는 게 좋겠다”며 “대답은 검찰 스스로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부터 원 전 원장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꾸준히 사임 의사를 전달받았으나, 자신이 반려했다고 진술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원 전 원장에게 “힘들어도 끝까지 가자”고 했다고 전했다.

원 전 원장은 2011년 인도네시아 사건으로 정치권에서 경질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검찰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뇌물을 준 것이 아니냐고 물었고 이 전 대통령은 이를 부인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원 전 원장이 사직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사건은 지난 2011년 2월16일 국정원 직원 3명이 협상 전략 등을 파악하고자 특사단이 머무는 호텔에 침입했다가 발각된 사건이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