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영국으로 탈출한 베트남인 “탈출하다 죽어도 괜찮았다”

입력 2019-10-29 00:06
르밍뚜안씨가 27일 베트남 응에안성의 자택에서 손자를 안은 채 울고 있다. 영국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아들 르반하는 한동안 연락이 끊겨 지난 23일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 에식스주에서 발견된 냉동 컨테이너 집단 사망사건 희생자 39명 중 한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영국으로 가는 도중에 죽어도 상관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영국행 외에는 내게 선택권이 없었다”

2년 전 베트남 북부에서 화물차를 타고 영국에 도착했다는 A씨(20·남)는 여전히 불법 이민자 신분으로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베트남에서 사는 것보다 목숨을 걸고 냉동 트럭에 올라 영국으로 오는 게 더 나았다고 얘기했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28일(현지시간) A씨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그는 “베트남에서의 생활은 정말 나빴다”며 “탈출을 시도하다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영국의 한 식당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는 그는 “당시로서는 영국에 오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영국으로 와야했다”고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토로했다.

그는 “어차피 나는 베트남에서 죽을 예정이었다. 영국으로 가는 도중에 죽어도 상관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영국행 외에는 내게 선택권이 없었다. 두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영국 에식스주의 한 산업단지에서 발견된 냉동 트럭에서 3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이들 중 상당수가 베트남 국적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는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베트남에 없는 기회가 이곳에는 있다. 이민 행렬은 계속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영국 냉동 컨테이너에서 39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EPA=연합뉴스

그의 말은 현재 베트남 상황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실제 베트남 청년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냉동 트럭을 타고 ‘브리티시 드림’을 쫓아 영국행을 택하고 있었다.

냉동 트럭 사망 사건 이후 영국 현지 매체들은 이와 비슷한 경로로 영국으로 들어온 베트남인들에 대한 다양한 인터뷰를 보도하고 있다.

가디언은 최근 네일샵에서 일하고 있는 10대 베트남 국적의 청소년 두 명이 영국의 청소년 보호단체로 이송됐다는 이야기를 내무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위조된 여권으로 외국으로 가는 경우는 정말 특별한, VIP 케이스에나 가능하다”며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화물 트럭에 숨어 해협을 건넌다”고 말했다.

그는 “네일샵에서 일하던 10대 소녀 B는 베트남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러시아로 이동해 영국까지 왔다”며 “러시아에서는 유럽행을 준비 중인 이들이 머무는 곳이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출국했다. 그들의 여정은 매우 다양한 단계로 나뉘었다. 그때마다 베트남 사람들이 함께했다”고 소녀의 말을 전했다.

그렇게 영국으로 들어온 A는 영국 도심에 있는 베트남인이 운영하는 네일샵을 스스로 찾아갔다. 물론 이 네일샵에서의 근무 조건은 상당히 열악했다. 하지만 B의 기준에서는 네일샵에서 주는 시급도, 일하는 시간도 베트남에서의 근무조건과 비교하면 훨씬 나았다.

소식통은 “베트남에서 온 소녀들 역시 이번에 냉동 트럭에서 사망한 이들과 같은 지방에서 왔다. 그들 중 한 명은 계속 영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두 소녀가 어떻게 경찰과 사회복지단체의 감시망에 올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 역시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왔다는 점이다.

영국 내무부가 지난 2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1명의 베트남인이 브로커를 통해 영국으로 입국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밀입국자인 탓에 정확한 수치라고 볼 수 없다. 또 이들에 대한 정보는 문서화돼있지 않아 영국으로 입국한 베트남인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돕는 한 자선단체는 지난해 7월부터 지난 7월까지 1년간 이 단체에 도움을 요청한 이들을 국적·성(性)별로 분석했을 때 베트남 남성이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베트남 국적의 사람들 209명과 함께 활동했다”며 “이는 5년 전에 비해 248% 증가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