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휩쓸린 100세 할머니가 집을 떠나지 않은 이유

입력 2019-10-28 17:32 수정 2019-10-28 17:36
지난 12일 제19호 태풍 하비기스가 일본에 접근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이치하라(市原)시에서 돌풍에 의해 차량이 넘어져 있다. 그 뒤로는 파손된 주택도 보인다. 연합뉴스

“난 괜찮으니 조심히 돌아가거라.”

제19호 태풍 ‘하기비스’가 동일본 일대를 강타하던 날 홀로 집을 지키겠노라 선언한 100세 할머니 오카다 고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오카다 할머니는 후쿠시마(福島)현 이와키시(市) 자택에 60년 넘게 살았다. 태풍이 마을을 휩쓸기 전날인 지난 12일도 마찬가지였다.

조카 시가 미사코(75)씨는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는 오카다 할머니를 찾아 “대피하셔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카다 할머니는 “나는 괜찮다”며 조카의 손길을 뿌리쳤다. 거센 폭풍이 몰아친다고 하더라도 반평생 넘게 살아온 집을 지키겠다는 게 이유였다.

오카다 할머니 사연을 소개한 마이니치신문 지면. 연합뉴스

그는 30년 전 남편을 잃었을 때도 텅 빈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100세가 될 때까지 홀로 집을 가꾸며 살아왔다. 가족들이 요양 시설 이야기를 꺼내면 “내 집이 좋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평소 다리가 조금 불편했지만 지팡이만 있으면 근처 편의점에 가는 것쯤은 문제없었다.

그런 할머니가 지난 13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조카를 돌려보낸 다음 날이자 101번째 생일을 9일 앞둔 날이었다. 하기비스가 몰고 온 비바람은 무자비하게 오카다 할머니의 보금자리를 침범했다. 근처 하천이 범람했고, 둑을 넘은 물살은 순식간에 동네를 삼켰다. 단층이었던 오카다 할머니의 집은 그대로 물속에 잠겼다.

현지 신문들은 오카다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도했다. 고인의 한 친척은 인터뷰에서 “건강이 나쁘지 않아 110세까지도 사실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사시던 집에서 돌아가신 것은 숙원을 이룬 것으로 생각한다”고 애도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