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가 현상’에 KDI는 “소비·투자 감소” 탓…정부는 “유가·농산물 가격 안정” 덕

입력 2019-10-28 14:54
연합뉴스

9월 공식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로 집계됐다. 올해 들어 나타난 이런 저물가 현상이 수요 측 요인이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이 나왔다.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 감소 등이 수요 측 원인이 될 수 있다. 저물가 현상에 대해 농산물 가격 하락·석유류 가격 안정세 등 공급 측 요인과 정책적 요인이 주로 작용했다고 밝힌 정부 측 설명과는 배치되는 부분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연구위원)은 28일 ‘최근 물가상승률 하락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1∼9월) 물가 상승률은 2013∼2018년 평균인 1.3%에 비해 0.9%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주요 공급 충격인 날씨나 유가 등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식료품과 에너지는 물가 상승률 하락에 -0.2%포인트 기여한 반면, 이를 제외한 상품(-0.3%포인트)과 서비스(-0.4%포인트)도 물가 상승률 하락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 연구위원은 “올해 물가 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이 모두 하락한 것은 공급 충격보다는 수요 충격이 더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공급 충격이 주도한 경우는 물가 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이 반대 방향으로, 수요 충격이 주도한 경우에는 같은 방향으로 각각 변동한다”고 말했다.

즉 공급 충격이 주도한 경우, 물가 상승률이 떨어지지만 경제 성장률은 올라간다. 그런데 현재는 물가 상승률과 경제 성장률이 모두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수요 충격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올해 1∼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0.4%)이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2.0%)보다 큰 폭으로 낮아진 데 대해서는 정부의 복지 정책이나 특정 품목에 의해 주도됐다기보다 다수 품목에서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며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했다.

정부의 복지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이 배제된 민간소비 디플레이터 상승률(상반기)이 0.5%로 축소됐고, 생산자물가 상승률(1∼9월)도 0.0%에 그쳤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평균값(0.4%)과 함께 중간값(0.3%)도 낮은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어, 물가 상승률 하락이 특정 품목의 극단치에 의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올해 1∼9월 물가 상승률이 작년에 비해 낮아진 품목의 비중은 63.7%였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 연합뉴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목표가 상충하는 통화정책의 운용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보고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낮아졌던 물가 상승률 추세가 미국, 영국, 일본을 비롯한 주요국에서는 반등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낮은 물가 상승률을 전 세계적인 저물가 현상의 반영으로 해석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통화 정책이 그동안 물가 변동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통화 정책의 운용체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보고서는 “2013년 이후 물가 상승률이 통화정책의 물가안정목표를 지속해서 하회한 점으로 볼 때, 우리 경제의 물가 안정이 충분히 달성되지 못했다”며 “예상치 못한 경제 충격에 따라 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와 일시적 격차를 보일 수는 있으나, 한 방향으로 괴리되는 현상이 지속한 점은 통화정책이 물가 변동에 충분히 대응해 수행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2017년 이후) 실질금리가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반대 방향으로 조정된 것이 통화정책이 물가와 경기 안정을 중심으로 수행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며 “근원물가 상승률이 상당 기간 1% 내외로 정체되고 경기가 둔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통화 당국은 가계 부채 급증에 대응해 2018년 11월 말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고 꼬집었다.

정 연구위원은 “물가 안정은 통화정책 이외의 정책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이 물가 안정을 중심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체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