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 ‘남중’ 발표한 하응백 평론가…“문학은 보통 사람의 이야기”

입력 2019-10-28 11:01
누구나 나이가 들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소설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는 떠오르는 법이지만, 이 작가의 가족사를 보면 유별난 데가 있다. 작가의 자전적인 스토리를 담긴 소설 ‘남중’(휴먼앤북스)의 일부 내용만 간추려보자. 소설에서 어머니는 팔순을 넘긴 나이에 돌연 시집을 가겠다고 선언한다. 상대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남편. 어머니는 결혼한 지 사흘 만에 남편을 떠나보냈는데,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국가유공자 연금을 받을 수 없었다. 뒤늦게 법원 판결을 거쳐 부부관계였음을 인정받고서야 연금을 받게 되고, 그제야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남편 돈으로 살아보겠네. 60년 만에.”

첫 소설 '남중'을 발표한 문학평론가 하응백. 휴먼앤북스 제공


남중을 펴낸 주인공은 문학평론가 하응백(58)이다. 그는 왜 이런 소설을 펴낸 것일까. 하응백은 28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40여년 전부터 생각한 소설”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부모님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어요. 제겐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더 늦출 수가 없었어요. 물론 에세이를 쓸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소설을 통해 감당해야 하는 이야기였어요. 소설은 상상력을 가미해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장르이니까요.”

소설은 연작소설의 얼개를 띠고 있다. 책을 펼치면 어머니의 삶을 담은 ‘김벽선 여사 한평생’, 어머니가 남편을 잃은 뒤 만난 남자 ‘하 영감’의 인생 스토리 ‘하 영감의 신나는 한평생’, 어머니와 하 영감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의 이야기 ‘남중’이 차례로 이어진다. 하응백은 “하나의 화폭에 다양한 장면을 담는 피카소의 그림처럼 입체적인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소설을 쓰면서 이것은 ‘입체 소설’이라고 여겼다. 형식적인 실험을 벌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1991년 한 신문사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며 문학평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하응백이 소설을 발표한 건 처음이다. 제목은 누군가의 머리 바로 위에 태양이 위치한 순간을 일컫는 단어 ‘남중(南中)’에서 빌려왔다. 하응백은 “대학 시절부터 언젠가 소설을 쓰면 남중이라는 제목을 쓰고 싶었다”며 “남중은 나와 하늘이 가장 가까운 순간, 내가 지구의 중심이 되는 소중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평론가로서 첫 소설을 낸 소감을 물었을 땐 “부담이 컸다”고 답했다.

“문학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예술이에요. 그런 차원에서 제 작품이 문학의 본령에서 어긋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지난해 2월에, 아버지는 1979년에 돌아가셨는데 만약 살아계시다면 제 소설을 읽고 굉장히 기뻐하셨을 거예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