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는 5년 걸렸는데…15년간 안 뚫린 한·러 공군 직통망

입력 2019-10-24 16:32
러시아의 A-50 조기경보통제기. 이 군용기는 지난 7월 독도 영공을 침범한 데 이어 지난 22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진입했다. 자료: 일본 항공자위대

한국과 러시아 양국 공군 간 직통전화를 설치하는 방안이 또 불발됐다.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과 러시아 군 당국은 23~24일 이틀간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에서 제9차 한·러 합동군사위원회를 열었다. 회의에선 남완수(공군 준장) 합참 작전3처장과 러시아군 준장급 간부가 양측 대표로 머리를 맞댔다. 한국 측은 지난 22일 러시아 군용기 6대의 KADIZ 무단진입을 거론하며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러시아 측은 군사적 긴장을 낮추는 노력을 한다는 데 공감했지만 ‘KADIZ 진입이 국제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공식별구역은 영공 침범과 우발 충돌을 막기 위해 각국이 임의로 설정해놓은 것이다. 이 구역에 진입하려는 외국 군용기는 관례적으로 사전통보를 하고 있다. 사전통보는 국제법에 규정된 의무가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KADIZ 무단진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24일 “준장급 대표가 만나 의미 있는 합의를 끌어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회의보다 한 단계 높은 한·러 장성급 군사교류회의 등을 통해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고위급 채널이 가동돼야 직통전화 개설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국과 중국의 해·공군 간 직통전화 설치까지는 5년이 걸렸다. 2003년 11월에 논의를 시작한 후 2007년 4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원자바오 총리 간 합의 등을 거쳐 2008년 11월 관련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한국과 러시아 군 당국 간 비행정보 교환을 위한 직통전화를 개설하자는 논의는 2004년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직통망 설치를 위한 MOU에 넣을 내용까지 협의했으나 이번에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문제는 앞으로 러시아 군용기들의 KADIZ 무단진입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군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KADIZ를 무시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직통전화를 통해 한국 측에 KADIZ 진입을 사전통보할 경우 군사 작전이나 훈련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유로운 비행경로를 확보해 동아시아에서의 미국 영향력을 견제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러시아가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28개 국가와 달리 방공식별구역 자체를 설정하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러시아 군용기는 지난 7월 중국과 연합훈련을 실시하며 독도 영공을 두 차례 침범했다. 현재까지 러시아는 침범 사실조차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